[시론/김용하]‘低부담 高복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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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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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새해 벽두부터 복지논쟁이 뜨겁다. 총선과 대선을 아직 1년 이상 남겨놓은 시점이라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나쁘지만은 않다. 유럽 등 선진국 선거를 보면 복지정책은 오래전부터 선거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어 왔다. 우리의 복지논쟁을 보면 구체적인 정책의 장단점이나 적정선, 우선순위 등에 대한 논의보다는 ‘된다, 안 된다’는 식의 흑백 공방만 오가고 있다. 선진국 문턱에 있는 국가답게 경제발전과 국민복지가 동시에 높아질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두고 품격 있고 진지한 논쟁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권, 정책제시 없이 흑백공방만

복지는 궁극적으로 돈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공짜는 없고, 조세나 사회보험료 등으로 조달된다. 고(高)복지에는 고부담이, 저(低)복지에는 저부담이 따르게 돼 있다. 저부담으로 고복지를 할 수는 없다. 각 나라의 경제사회적 환경에 따라 적정한 복지와 부담 수준을 결정하면 되고,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국가가 고복지-고부담을 한다고 해서 비판할 것도 없고 저복지-저부담을 한다고 해서 우려할 것도 없다. 각 나라의 국민들이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고복지를 저부담으로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복지 선택을 할 때 대두되는 문제점은 복지 수혜자와 부담자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에 따른 부담보다 혜택이 더 클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은 고복지를, 그 반대의 경우 저복지를 선호하게 돼 이해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이때 복지 선택을 단순히 선거에 맡겨두면 다수자의 횡포가 발생할 수 있고, 소수자의 이해는 무시당할 가능성이 존재하게 된다. 폐쇄경제하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생겨도 내부에서 조정되겠지만 개방된 글로벌 경제하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자본과 노동의 이동을 초래하고 궁극적으로 복지를 받쳐주는 경제의 건실성이 저해되거나 국가 공동체의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복지 선택은 어렵다.

정치는 이러한 극단적인 선택들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해 갈등이 조정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복지 대안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가령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는 이론적으로는 양 끝의 주장이지만 우리나라 복지의 현재 위상을 보면 그렇게 극단적으로 싸울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1964년 산재보험, 1977년 현재의 건강보험, 1988년 국민연금, 1995년 고용보험이 도입돼 선진국의 보편적 복지의 상징인 4대 사회보험 제도가 정착단계에 와 있고 보육 등 복지서비스도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선별적 복지의 대명사인 극빈자를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 예산은 7조5000억 원 수준으로 2011년 복지 관련 예산 및 기금 규모 86조4000억 원의 10%도 안 된다. 다만 우리 사회보험제도가 보험료 납입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보험료 납입이 어려운 상당수의 기초보장대상자가 아닌 저소득 국민이 복지 사각지대에 있고, 제도에 따라서는 보장 수준이 충분치 못해 이를 보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복지 내실화-우선순위 논의가 먼저

복지 대상자나 보장 수준의 확대에는 추가적인 재원이 요구되기 때문에 부담 가능한 적정 범위에 대한 논란이 항상 존재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은 꾸준히 높아져 왔다. 경제기반 없는 복지는 있을 수 없고 복지 향상 없는 성장도 허무하다. 성장과 분배에 대한 가치판단의 경중에 따라 속도는 다소 차이가 나겠지만 방향성은 크게 다를 수 없다는 점에서 복지 논의는 담론과 외형적 규모보다는 영역별 복지의 내실화와 우선순위, 구체적 대안과 방법론의 차이를 가지고 할 때가 됐다. 이러한 논의는 많으면 많을수록 정책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국민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든다는 것이 선진국의 역사적 경험임을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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