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소박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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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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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디자인계 살아있는 전설 獨출신 디터 람스의 ‘Less and More’ 展

《있을 건 있고, 없어도 될 건 아예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덜어낼 것도, 보탤 것도 없다. 전시장에 놓인 계산기와 면도기 등 일상용품부터 오디오와 가구까지 다양한 물건들은 미니멀리즘 작품처럼 보인다. 제품의 나이는 마흔을 훌쩍 넘긴 것도 많지만 세월의 무게에도 녹슬지 않는 견고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군더더기 없는 단순 명료한 디자인으로 산업디자인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독일 디자이너 디터 람스.사진 제공 대림미술관
군더더기 없는 단순 명료한 디자인으로 산업디자인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독일 디자이너 디터 람스.사진 제공 대림미술관
독일 출신으로 산업디자인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꼽히는 디터 람스(78)의 대표작을 소개하는 디자인 전시(‘Less and More-디터 람스의 디자인 10계명’)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작은 가전사였던 브라운사에 1955년 입사해 40여 년간 함께 일하면서 람스와 그의 팀이 만든 생활용품들, 독일의 비초에사를 통해 선보인 가구 등 400여 점을 볼 수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응용미술관과 일본의 산토리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전시로 일본 독일 영국을 거쳐 서울에 왔다.

단순하고 절제된 디자인에 실용성을 결합한 그의 작업은 전후 산업디자인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일본 ‘무지’ 브랜드의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20일까지. 2000∼5000원. 02-720-0667

○ 디자인에서 기억해야 할 것들

람스는 좋은 디자인을 이렇게 정의한다. ①혁신적이다. ②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③아름답다. ④제품을 이해하기 쉽게 한다. ⑤정직하다. ⑥불필요한 관심을 끌지 않는다. ⑦오래 지속된다. ⑧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⑨환경친화적이다. ⑩할 수 있는 한 최소한으로 디자인한다.

① 디터 람스가 1960년대 디자인한 녹음기와 스피커. 복잡한 조작 버튼이 달린 제품임에도 깔끔하고 명료한 인상을 준다.
② 1960년 디자인한 시스템 가구.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확장하고 유동적으로 재배열할 수 있는 새로운 선반 시스템을 선보인 작품이다.
③ 1970년에 선보인 헤어드라이어.테두리를 부드럽게 마무리한 직육면체의 원색 드라이어.
④ 오디오 겸 라디오(1956년). 발표 당시 혁신적 디자인 때문에 경쟁회사들이 ‘백설공주의 관’이라고 놀렸지만 현대의 모든 오디오 제품의 모델이 된 디자인이다. 사진 제공 대림미술관
① 디터 람스가 1960년대 디자인한 녹음기와 스피커. 복잡한 조작 버튼이 달린 제품임에도 깔끔하고 명료한 인상을 준다. ② 1960년 디자인한 시스템 가구.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확장하고 유동적으로 재배열할 수 있는 새로운 선반 시스템을 선보인 작품이다. ③ 1970년에 선보인 헤어드라이어.테두리를 부드럽게 마무리한 직육면체의 원색 드라이어. ④ 오디오 겸 라디오(1956년). 발표 당시 혁신적 디자인 때문에 경쟁회사들이 ‘백설공주의 관’이라고 놀렸지만 현대의 모든 오디오 제품의 모델이 된 디자인이다. 사진 제공 대림미술관

평생에 걸쳐 그는 자신이 만든 ‘10계명’을 실천해 왔다. 매끄러운 은빛 금속상자의 뚜껑을 열면 다양한 버튼이 드러나는 단파 라디오(1963년), 이젤에 놓인 조각작품 같은 영국 QUAD사 스피커(1959년), 이동하며 들을 수 있는 기능적이고 세련된 소형 오디오(1959년), 기기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게 모듈러 시스템을 적용한 가정용 음향기(1959년),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을 연상시키는 스피커(1959년) 등. 반세기 전의 제품임에도 쉽고 혁신적이면서 기능적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웅변한다.

여기에 시계와 라디오를 결합한 깔끔한 라디오 시계, 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원색의 사각형 헤어드라이어, 원통형 오브제 같은 라이터 등은 지금 눈으로 봐도 탐이 난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사람들이 싫증내지 않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임을 일깨워준다.

○ 더 적지만 더 좋은

이번 전시는 뛰어난 디자인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고민하는 자리다. 디자인의 문제란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고 생활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일시적 유행에 휩쓸리거나 “예술입네” 하는 오만한 자세의 디자인을 경계하는 디터 람스. 더 적지만 더 좋다(‘Less but better’)는 그의 디자인 철학을 주목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별스럽게 자신을 과시하지 않지만 은은하고 소박한 디자인으로 길게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어온 디자이너. 전시에 맞춰 내한한 그는 “훌륭한 디자인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경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디자인은 문화이고 미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디자인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의 미학적 균형과 더불어 쓰고 버리는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에 우리의 삶과 디자인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새 디자인’이란 이유로 금방 버려질 물건을 만들고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하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따끔한 질책과 함께.

군더더기가 없어야 좋은 것이 어디 디자인뿐이랴. 우리의 생활도 불필요한 것을 덜어낼 때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닐까.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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