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안현진] 정공법으로 승부한 수사물 ‘리졸리와 아일즈’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4일 12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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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말하면 단순명쾌하고, 삐딱하게 말하자면 '센스 없는' 작명이다. '리졸리와 아일즈'(Rizzoli & Isles)라니, TV시리즈의 주인공 2명의 이름을 붙여 만든 타이틀인데, 아마 그 기원을 찾아보면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까지로 거슬러 올라갈 게 분명하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리졸리와 아일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분명한 드라마 '리졸리와 아일즈'는 각종 TV방송국과 케이블 채널이 휴지기(기존방영물을 재탕삼탕 우려먹는 지루한 시기)를 맞이했던 7월, TNT에서 방영을 시작한 조금은 용감한 TV시리즈다. 장르 역시 흔하디 흔한, 역시 삐딱하게 말해보자면 개성이 없는 수사물이다.

제인 리졸리(앤지 하몬스 분)는 보스턴 경찰 강력계 (살인전담) 형사이고, 마우라 아일즈(사샤 알렉산더)는 역시 보스턴 경찰의 검시관이며 과학수사관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수사물을 방영하지 않는 채널이 없을 정도인 미국 드라마계에서 '리졸리와 아일즈가' 내세울만한 유일한 특징은 이 두 캐릭터가 여자라는 점. 리졸리와 아일즈는 30대 중반을 넘어선 전문직 여성인데, 훤칠한 키, 허스키한 목소리, 남성적인 매력을 과시하는 리졸리와, 당장이라도 잡지 표지촬영을 할 듯 완벽한 외모를 가졌으나 성격이나 말투는 '빅뱅 이론'의 수퍼 괴짜 셸던의 여자 버전인 아일즈, 이렇게 비슷한 점이라고는 없는 두 여자가 짝꿍이 되어 활약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짝패로서의 매력은 드라마 타이틀의 심심한 부분을 메우고 남는다. 마치 리졸리와 아일즈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며 관계를 만들어가듯 말이다.

▶간결하고 명쾌한 정공법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리졸리와 아일즈'는 미국의 소설작가 그레첸 테스의 추리소설 '리졸리/아일즈' 시리즈에 뿌리를 둔 이야기다. 두 주인공이 보스턴에서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단짝이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두 사람은 각자의 집에서 밤을 보낼 만큼 친한 사이인데, 이렇듯 절친한 두 미혼 여자인 친구들이 '범죄 해결'이라는 목적을 인생의 소명인양 받들며 보스턴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각자의 성격과 능력을 발휘해 해결하는 것이 드라마의 구성이다. 매 에피소드의 도입부는 여느 수사물이 그러하듯 살인사건을 거칠게 스케치하고, 그 끊어진 선과 선을 잇는 역할은 온전히 리졸리와 아일즈,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에게 맡겨진다. 한데 이런 정직하고 반듯한 구성의 드라마가 의외로 꽤 인기가 있다.

'리졸리와 아일즈'는 이제는 장수시리즈가 된 TNT의 '클로저'와 연이어 방영 스케줄이 잡혔는데, '클로저'의 인기를 빌었는지, 파일럿 방영 때 7백만 시청자를 TV앞에 앉혔으며, 회를 거듭할수록 그 숫자를 불려갔다. 그리하여 시즌1의 세 번째 에피소드가 방영을 마친 뒤 TNT는 '리졸리와 아일즈'에게 시즌2라는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아마 늘 새롭고 놀라운 것을 보여주려는 요즘 TV세상의 트렌드와 역행한 정직한 정공법이 통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책 한권 분량의 이야기를 드라마의 배경으로 활용, 과거-현재-미래의 가능성 열어

하지만 정공법이 '리졸리와 아일즈'를 이 칼럼에서 소개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드라마 타이틀이 밋밋하다고 생각해 주변의 추천에도 미루고 보지 않고 있었는데, 우연히 보게 된 파일럿 속에서 그 상투성을 뒤집는 참신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리졸리와 아일즈'의 파일럿은 제인 리졸리와 그녀의 숙적인 연쇄살인마 찰스 호이트의 '재회'에 대한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원작소설인 '리졸리/아일즈' 시리즈의 1권 '외과의사'(The Surgeon)의 내용(외과 지식을 가져 시체를 훼손하는 연쇄살인범이 제인의 양손에 메스를 꽂아 흉터를 남긴 뒤 체포된 사건)을 TV시리즈에서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시간적으로는 과거의 사건으로 활용해, 드라마 첫 회의 농도를 다른 드라마의 파이널 에피소드만큼이나 높였다.

그러다보니 이 파일럿은 보통 TV수사물에서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 등장하는 천재범죄자와 그를 쫓는 수사관이 벌이는 숙명의 한판 승부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첫 에피소드이면서도 파이널 같은 진한 인상을 남긴 덕분인지, '리졸리와 아일즈'는 넘쳐나는 수사물 속에서도 참신한 시도로 승부했다는 중론을 얻었다. 또한 '외과의사'로 만들어 놓은 드라마의 배경은, 찰스 호이트를 두 번째 검거한 뒤 감옥에 갇힌 호이트를 흠모한 팬이 벌이는 모방범죄 에피소드인 '어프렌티스'로 순조롭게 이어져, '리졸리와 아일즈'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원활하게 연결해주는 포석이 되었다.

▶주조연 연기자들의 찰떡궁합

하지만 심각한 살인사건이나 호이트와 리졸리 사이에 놓이는 긴장감보다도 '리졸리와 아일즈'를 즐겨 보게 만드는 이유는 역시 정공법이라고 불릴만한 이유다. 바로 리졸리와 아일즈를 연기하는 앤지 하몬스과 사샤 알렉산더는 물론, 리졸리의 파트너였으나 찰스 호이트에게 납치되어 메스에 꽂힌 사건 뒤 파트너에서 해제된 코르삭 형사(브루스 맥길), 그리고 새로운 파트너 프로스트 형사(리 톰슨 영), 리졸리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앙숙이었으나 뒤늦게 그것이 짝사랑의 표현이었음을 고백하는 조이 그랜트 경감(도니 왈버그), 리졸리와 아슬아슬하게 감정의 줄타기를 하는 FBI요원 딘(빌리 버크) 등이 보여주는 거슬리는 부분이 없는 부드러운 조합 때문이다. 경악스러운 사건도 없고, 뛰어난 미인도, 화려한 도시도 없지만 '리졸리와 아일즈' 안에서 그 사람들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며 한 올 한 올 드라마를 완성해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조연은 리졸리의 부모 역할을 맡은 두 배우, 로레인 브라코와 채즈 팔민테리다. 리졸리, 라는 이름이 넌지시 시사하듯, 리졸리 가족은 이탈리아 이민자 가족인데, 넉넉한 자식사랑을 다소 부담스럽게 표현하는 과보호 어머니와 무뚝뚝하면서도 부인과 자식에게 끔찍한 애정과 헌신을 표현하는 아버지라는 이탈리아의 부모상을 브라코와 팔민테리는 사랑스럽게 연기해낸다.

한 에피소드를 예로 들자.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리졸리와 아일즈를 응원하기 위해 바비큐 도구를 챙겨 거리로 나온 엄마 안젤라는 신이 나 옆에 자리한 응원팀과도 핫도그를 나누고 건배와 포옹을 하지만, 아빠는 오랜만에 쉬는 날인데도 쉬지 못한다며 입이 튀어나온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하는 말, "당신 아까부터 다른 사람들과 즐거웠잖소? 나에게 관심이나 있소?" 젊은 시절이 지난 중년배우들에게 돌아갈 자리가 대부분은 '주인공의 부모님'이라는 걸 느끼는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부모들도 젊은 시절에는 젊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이 두 배우를 보면 마음에 스친다.

▶수사물이자 경찰드라마이자, 가족드라마

그러고 보니 '리졸리와 아일즈'는 기본적으로는 수사물의 구조를 가졌지만, 경찰 내부의 파트너십과 신의, 우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찰드라마이자, 끈끈한 가족애를 일깨우는 가족드라마이기도 하다. 나는 가족이 나오지 않는 영화나 드라마를 거의 보지 못했다. 현재가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 뒤에는 늘 가족이 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리졸리와 아일즈'를 그 어떤 수사물보다 지지하고 싶다. 시즌2에서는, 부유한 미국 초기 이민자 가문에 입양된 아일즈의 생부모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어질 예정이라서, 시즌1에서 리졸리의 가족들이 채워준 드라마의 배경이, 밝은 쪽이든 혹은 어두운 쪽이든 두배로 북적일 것이 기대된다.

안현진 잡식성 미드 매니아 joey04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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