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편지]진주현/美블랙프라이데이 쿠폰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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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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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왔을 때 신기했던 점 중의 하나가 수많은 종류의 할인 쿠폰이었다. 쿠폰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기만 했던 나에게 쿠폰을 열심히 모으는 미국인의 모습은 매우 낯설었다. 얼마만큼 할인을 받기에 저렇게 열심히 모을까 하는 생각에 나도 이전에는 무심코 버리던 전단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야채 1달러 할인과 같은 소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백화점에서 그날 구입한 모든 물건을 무조건 20%씩 깎아준다는 쿠폰까지 다양했다.

전단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쿠폰을 내려받을 수 있고 그렇게 하면 가끔씩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깜빡하고 쿠폰을 안 갖고 갔거나 쿠폰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을 때 영수증을 들고 다시 가면 대부분의 상점에서 가격 조정을 해 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미국의 쿠폰 문화가 절정을 이루는 때가 1년에 몇 번 있는데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블랙 프라이데이가 그중 하나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인데 다음 날인 금요일에 자그마치 1억 명이 넘는 미국인이 쇼핑에 나선다고 한다. 블랙 프라이데이를 겨냥해 각종 쿠폰이 몇 주 전부터 집으로 날아든다.

이날은 가게들이 대부분 오전 5시부터 문을 여는데 0시부터 꼬불꼬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낯선 장면이 아니다. 내 친구 역시 대열에 동참해 오전 6시에 옷가게에 들어섰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옷을 제대로 고르기도 힘들었을뿐더러 그나마 고른 옷 두 벌을 계산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려 밖으로 나왔더니 오후 1시였다고 한다.

딱히 살 것도 없고 새벽부터 쇼핑을 하러 가기도 이상하고 해서 나는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에 동참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재작년에 찾아오신 부모님께서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날이 추수감사절 다음 날 새벽이었다. 공항에 모셔다드린 후 섭섭한 마음을 달랠 겸 블랙 프라이데이 구경도 할 겸 동네의 쇼핑센터로 향했다. 오전 5시에 정말로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진짜 사람이 대낮처럼 많았다. 대체 얼마나 아끼기 위해서 이 시간에 사람들이 쇼핑을 할까 싶었는데 쿠폰을 중복 적용받으면 정말 싸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날까지도 정가에 판매하던 물건을 이날에만 반값에 판매하고 바로 다음 날이면 다시 정가로 돌아가니 어찌 블랙 프라이데이에 열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작년 추수감사절은 뉴욕의 외삼촌댁에서 보냈다.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추수감사절 다음 날 아침 일찍 차를 몰고 거리로 나섰다. 뉴욕과 펜실베이니아 주 경계에 있는 대형 아웃렛 쇼핑몰 근처에 이르자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이날이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사실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사람이 너무 많아 고민이 되긴 했지만 나 역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 인파를 뚫고 쇼핑에 나섰다. 여기서도 일단 고객센터에 가서 쿠폰을 두둑하게 챙겼다. 필요했던 물건을 자그마치 40% 할인받고 샀다. 나는 마치 큰일을 해낸 양 쇼핑백을 차에 가득 싣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이런 게 꼭 좋지만은 않을 때도 있다. 물건값이나 할인율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어 제품의 질보다는 가격에만 매달리는 사례도 생기고 시간을 들여 열심히 쿠폰 검색을 했는데 몇백 원밖에 아끼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일도 발생한다. 또 필요하지 않은 물건인데도 단지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사게 되는 사례도 종종 생긴다. 쇼핑의 즐거움이야 말해서 무엇하랴만 가끔씩 쿠폰의 홍수 속에서 어지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올해로 미국 생활 7년째. 이제는 열심히 쿠폰을 오리고 모으는 일이 낯설지 않다.

진주현 재미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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