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이 아침, 희망을 입고 절망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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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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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은 깨어 있네/이해인 지음/220쪽·9500원·마음산

병상일기2

아플 땐 아프다고
신음도 하고
슬프면 눈물도 많이
흘리는 게 좋다고
벗들이 나에게 말해주지만
진정 소리 내는 것이
좋은 것인가
나는 나의 아픔과 슬픔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지
그들은 내게 딱 부러지게
대답은 안 했지만
침묵을 좋아하는 눈빛이기에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지
끝내 참기로 했지》

“아침에 잠이 깨어 옷을 입는 것은 희망을 입는 것이고, 살아서 신발을 다시 신는 것은 희망을 신는 것임을 다시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이해인 수녀(사진)의 신작 시집 ‘희망은 깨어 있네’는 희망에 관한 시집이다. 시인은 암투병 생활을 한 지 2년여 만에 병상에서도 틈틈이 집필했던 100편을 모아 시집을 펴냈다. 물 한 모금 마시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항암, 방사선 치료가 30여 차례 이어졌지만 그는 “고통의 학교에서 새롭게 수련을 받은 학생”이라고 자처한다. 육체적 고통, 심리적 동요를 극복하고 세상과 사물, 인간을 좀 더 넓고 여유 있게 대하는 법을 배웠다고. 그래서 시인이 말하는 희망이란 먼 미래에 있지도, 동떨어진 곳에 있지도 않다. 길을 걷고,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도하는 것. 바로 이곳, 현재에 있다.

“사람들이 무심코 주고받는/길 위에서의 이야기들/맛있다고 감탄하며/나누어 먹는 음식들/그들에겐 당연한데/나에겐 딴 세상 일 같네//누구누구를 만나고/어디어디를 가고/무엇무엇을 해야지/열심히 계획표를 짜는 모습도/낯설기만 하네…아프고 나서/문득 낯설어진 세상에/새롭게 발을 들여놓고/마음을 넓히는 일이/사랑의 임무임을/다시 배우네”(병상일기3)

시인은 “몸이 아프고 보니 주변의 아픈 사람들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 몸이 아프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니 세상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수필가 장영희 씨, 화가 김점선 씨, 김수환 추기경 등 먼저 떠난 지인들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시편들도 눈에 띈다.

“오늘은 나도/이상하게 기운이 없는데/힘내!라고/말해줄래요?/언제 우리/다시 만날 그날까지/그대가 좋아하는/맨드라미꽃 열심히 그리며/기쁘게 지내세요/심심해하지 말고-/“미치겠다!”라고 말해서/나에게 야단맞은 것/늘 재미있어 했지요?/그 나라에서도/고운 말 쓰는 것/절대로 잊지 말고요/알았지요?”(‘김점선에게’)

시집 말미에는 ‘시를 꽃피운 생각들’이란 제목으로 2008년부터 2009년까지의 병상일지가 짤막하게 수록돼 있다. 수술실에서 나와 마취가 깨어날 때 느꼈던 고마움, 포도 한 알, 귤 한 쪽의 단맛을 음미하며 느끼는 즐거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평범한 거리풍경, 햇살에서 느끼는 황홀한 생명감 등이 세세히 기록돼 있다. 시인은 이런 성찰과 깨달음 가운데서 희망이 바로 우리 가까이 있다고 노래한다.

“나는/늘 작아서/힘이 없는데/믿음이 부족해서/두려운데/그래도 괜찮다고/당신은 내게 말하는군요//살아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희망이라고/내가 다시 말해주는/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고맙습니다//그래서/오늘도/나는 숨을 쉽니다/힘든 일 있어도/노래를 부릅니다/자면서도/깨어 있습니다.”(‘희망은 깨어 있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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