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환상을 먹고 자라는 사랑의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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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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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뮤지컬 ‘판타스틱스’

서로 원수지간인 척하는 부모의 작전에 속아 사랑에 빠진 마트(김산호)가 루이자(최보영)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있다. 사진 제공 이다엔터테인먼트
서로 원수지간인 척하는 부모의 작전에 속아 사랑에 빠진 마트(김산호)가 루이자(최보영)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있다. 사진 제공 이다엔터테인먼트
크리스마스에 연인과 함께 볼 공연을 찾는 이가 있다면 뮤지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공연된 ‘판타스틱스’는 어떨까. ‘트라이 투 리멤버’란 주제가로 더 유명한 이 뮤지컬은 42년간(1960∼2002년)이나 미국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의 한 작은 극장에서 공연됐다. 2008년 새로 만들어진 작품이 지금도 뉴욕에서 공연 중이다.

한국에서는 김산호 최보영 씨가 주연하는 한국어 공연이 내년 1월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2관(02-762-0010)에서 펼쳐지고 있다.

부모의 말이라면 무조건 반항하는 사춘기 자녀를 둔 이웃사촌 벨로미(서현철·오대환)와 허클비(김지훈). 둘은 사돈이 되려고 묘책을 생각해낸다. 양쪽 집 담장을 높이 쌓고 일부러 원수지간처럼 행동한 것. 벨로미의 딸 루이자(최보영)와 허클비의 아들 마트(김산호·배승길)는 부모의 책략을 모른 채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아버지들의 ‘음모’는 곧 발각되고 자신들의 사랑이 조작된 것이란 사실에 상처받은 연인은 방황한다.

이 이야기의 연원은 깊다. 부모의 반대에도 사랑을 나누다 비극적 최후를 맞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피라무스와 티스베’가 그 뿌리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말년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서 극중극으로 등장하며 젊은 시절 셰익스피어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 되기도 했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로 유명한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은 여기에 부모의 의도적 개입이 가미된 ‘로마네스크’를 썼고 ‘판타스틱스’는 이 ‘로마네스크’를 원전으로 삼았다.

이처럼 ‘판타스틱스’는 수천 년간 전승되면서 변형을 거듭한 사랑의 원형을 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러브스토리가 최장기 공연 뮤지컬에 담겨 있는 셈이다. 뮤지컬은 여기에 다시 엘가로(김태한)라는 연출가·해설가의 손길로 변주하는 재미를 부여한다. 관객은 엘가로와 함께 극 안팎을 넘나들며 사랑이 어떻게 환상을 먹고 자라는지, 그 환상이 사랑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체험한다. 3만5000원.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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