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혜승]독일의 다문화시스템보다 중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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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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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올 한 해 ‘달라도 다함께-글로벌 코리아, 다문화가 힘이다’를 주제로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조명하고 해외 사례도 보여주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했다. 그 기획이 마무리될 무렵인 지난주 독일을 방문하게 됐다. 중소기업을 취재하기 위한 출장길이었지만 이미 이민 3세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첫 회부터 다문화 기획에 참여해 관심이 남다르던 터였다. 그러던 중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일이었다.

14일 저녁 무렵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도착했다. 호텔을 찾아가려면 다시 지하철을 타야 했는데 승차표 발권기의 사용법을 몰라 끙끙거리던 순간, 모자를 눌러 쓴 한 흑인 남자가 옆에 다가왔다. “어디까지 가나요?”

흠칫 놀랐다. 독일을 안내하는 여행책자에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특히 조심하라 했던 경고가 머리를 스쳤다. 인근에 부랑자가 많아 범죄율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경계의 눈빛으로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남자는 서툰 영어로 설명을 계속했고, 승차표를 뽑는 시범까지 해보인 뒤 사라졌다.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그 덕분에 차표를 손에 쥔 기자에겐 미안한 기분이 들이닥쳤다.

30분쯤 뒤 목적지 근처에 도착해 길을 걷다가 마을 장터를 만나게 됐다. 다양한 얼굴색의 이민자와 독일인들이 좌판을 벌이고 먹을거리와 크리스마스 장식품 등을 팔고 있었다. 마침 시장기가 돌아 튀김을 5유로(약 8400원)어치 샀다. 20유로짜리 지폐를 내고 잔돈을 챙겨 돌아서려는데 돈을 받은 독일 청년이 동료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됐다. “중국인(기자를 지칭)이 지폐를 내고 갔는데 위조가 아닐까”, “위조지폐 구분법을 아느냐”는 등의 내용이었다. 지폐를 불빛에 이리저리 비쳐보는 이들에겐 빳빳한 새 돈이 더 의심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난 중국인도 아니고, 위조지폐도 아니니 걱정 말라”고 말하려다 프랑크푸르트 역에서 만났던 흑인 남자가 떠올랐다. 기사를 통해 다문화 사회의 과제와 인식 변화의 시급함을 누누이 강조하던 기자 스스로도 마음으로는 편견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보다 오랜 이민 역사를 가진 독일은 이민자들에게 정책적으로 내국인과 똑같은 법적 대우를 해준다지만 이민자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탓에 여러 가지 갈등을 겪고 있다. 다문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우리 역시 결국 시스템이 아닌 열린 마음이 해법이고, 그 열쇠 또한 우리 스스로가 쥐고 있다는 생각이다.

강혜승 산업부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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