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금발 미녀의 좌충우돌 한국 관객과도 통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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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7일 03시 00분


여성 관객들의 ‘로망’을 만족시키는 분홍빛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 미용실 ‘헤어지지마’에서 엘 우즈(김지우·왼쪽)와 폴렛(전수경·가운데)이 택배기사 카일(서홍석)의 몸매에 감탄하고 있다. 사진 제공 PMC프러덕션
여성 관객들의 ‘로망’을 만족시키는 분홍빛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 미용실 ‘헤어지지마’에서 엘 우즈(김지우·왼쪽)와 폴렛(전수경·가운데)이 택배기사 카일(서홍석)의 몸매에 감탄하고 있다. 사진 제공 PMC프러덕션
■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금발 미녀가 주인공, 하버드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배경인 지극히 미국적인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는 한국 무대에서도 보편적인 감성을 전달했다. 서가에 갇힌 옛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 여성의 관심거리와 고민, 실패와 성공을 속도감 있게 펼쳐 보였다. 국내 첫 한국어 공연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아티움에서 14일 막이 오른 ‘금발이 너무해’는 뮤지컬 공연장의 객석을 주로 채우는 젊은 여성 관객들의 취향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주인공 엘 우즈(김지우 이하늬 제시카)는 ‘예쁘긴 하지만 진지하지 않다’는 이유로 하버드대 로스쿨에 다니는 남자친구 워너(고영빈)에게서 결별을 통보받는다. 그와 재회하려고 하버드대 로스쿨에 진학하고 에밋 선배(김동욱 김도현)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재판을 승리로 이끌어 낸다는 줄거리다. 법정 드라마라는 뼈대를 분홍색 리본과 화려한 스팽글, 깃털로 장식했고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양념도 곳곳에 쳐뒀다. 우즈는 빼어난 외모 때문에 멍청할 것이라는 편견에 시달렸지만, 그런 시선에 좌절하지 않는 용기로 결국 성공을 거두고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는 새 남자친구까지 얻어 뭇 여성의 ‘로망’을 대리 만족시킨다. 바가지 씌우려는 백화점 점원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늘 차이기만 하는 미용실 주인 폴렛에게 남자를 유혹하는 ‘굽히고 튕기기’ 춤을 가르쳐 주며, 파마한 직후 샤워를 했다는 증인을 법정에서 야무지게 반박하는 에피소드도 여성 관객의 코드에 들어맞는다.

우즈 역을 맡은 김지우는 철없는 미녀가 동료들의 무시, 교수의 성추행을 겪으면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2막에서 빛을 발했다. 조연들의 연기와 노래도 탄탄했다. 로스쿨의 캘러한 교수 역할을 맡은 김형묵은 묵직한 저음과 날을 바짝 세운 카리스마로 자신감 넘치는 비열함을 표현했다. 폴렛 역의 전수경이 보여준 연기도 한껏 능청스러웠으며 브룩 역의 백주희, 비비안 역의 이영미가 선보인 뮤지컬 넘버들은 힘차게 뻗어나갔다.

이번 한국어 공연은 브로드웨이에서 대본과 음악만 가져왔다. 무대와 의상, 안무, 연출은 한국 제작팀의 몫이었다. 무대 장치는 ‘실속’을 선택했다. 무대를 꽉 채우지 않고 바닥에서 백화점 쇼케이스, 책상 같은 장치와 배우들이 솟아오르도록 만들어 집중의 묘미를 살렸다. 그러나 실연당한 우즈를 친구들이 찾아가는 대목에서는 집만 덩그러니 서 있어 휑한 느낌이 들었다.

‘진짜’ 강아지 브루저와 루퍼스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이 탄성을 터뜨렸으나 우즈가 브루저를 옆구리에 끼고 춤추며 노래할 때는 강아지의 겁에 질린 듯한 모습이 불편했다. 2010년 3월 14일까지. 4만∼9만 원. 02-738-8289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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