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비루한 삶, 치사한 삶, 그래도 건너야 할 삶

  • 입력 2009년 10월 1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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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사회부 기자가 주인공인 소설에 왜 ‘공무도하’란 제목을 붙였을까. 작가는 “백수광부의 사체는 하류로 떠내려갔고 그의 혼백은 기어이 강을 건너갔을 테지만,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 문학동네
일간지 사회부 기자가 주인공인 소설에 왜 ‘공무도하’란 제목을 붙였을까. 작가는 “백수광부의 사체는 하류로 떠내려갔고 그의 혼백은 기어이 강을 건너갔을 테지만,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 문학동네
◇ 공무도하/김훈 지음/328쪽·1만1000원·문학동네

2년만의 신작 ‘공무도하’ 낸 소설가 김훈 인터뷰

소설가 김훈 씨(61)는 한국 문단의 예외적 작가다. 기자 출신 작가인 그는 1994년 40대 중반의 나이로 뒤늦게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탐미주의적인 문체와 허무주의적 세계관, 선 굵은 역사적 주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로 단숨에 중장년 남성 독자층을 폭넓게 확보한 작가가 됐다. 그의 장편소설인 ‘칼의 노래’(2001년) ‘남한산성’(2007년)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가 ‘남한산성’ 이후 2년 만에 신작 ‘공무도하’로 돌아왔다. 역사소설을 주로 썼던 작가는 이번에 처음으로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장편을 선보였다. 한국매일신문의 문정수라는 젊은 사회부 기자를 통해 냉혹하고 비정한 세계, 구차하고 비열한 삶의 밑바닥까지 가감없이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의 주된 배경이 되는 도시는 ‘해망’이란 가상의 공간이다. 작가는 컴퓨터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지만, 올해 5∼9월에 출판사의 도움으로 이 작품을 인터넷에 연재하기도 했다.

‘공무도하’ 출간을 기념해 인터뷰를 요청하자 작가는 “글로 하는 것이 더 명료하게 뜻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아주 성실히 답변해 드리겠으니 팩스로 질문지를 보낸 뒤에 다시 전화해 달라”고 말했다. 작가의 뜻에 따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문정수 기자의 노력이 매번 좌절된다는 점에서 전작(前作)들처럼 허무주의적 세계관이 엿보이는 것 같다. 그는 불의에 맞서기보다는 관찰하거나 방관하는 데 그친다. 반복 등장하는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라는 문장에도 이런 정서가 배어나는 것 같은데….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아무런 주의자도 아니다. 나에게 ‘주의’란 없다. ‘주의’가 없다는 것은 허무주의인가. 그런가? 문정수 기자는 세상의 벽에 부딪혀 주저앉지만, 또 거기에 맞서는 자이다.”

―제목인 ‘공무도하’는 고조선 때의 노래 ‘공무도하가’에서 따왔다고 했다. 백수광부가 강을 건너다 빠져 죽자 그의 아내가 한탄하며 불렀다는 노래다. 왜 이 제목을 붙였나.

“고교 시절 국어시간에 ‘공무도하가’를 배웠다. 백수광부의 죽음은 슬프고 무서웠다. 그는 대체 어디로 가려던 것일까. 그 슬픔과 무서움이 늘 내 마음속에 남아서 현실의 의미를 돌아보게 했다. 이 제목은 소년 시절의 충격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연재를 시작할 때 “‘공무도하가’는 강 건너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 함께 살자는 노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기자 시절 문정수에 가까운 기자였나.

“이 소설은 나 자신의 개인적 생애나 사적인 체험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다. 나는 기자 시절에 사상가나 선도자나 문명 비평가나 무관의 제왕이 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미군부대 공습훈련으로 인한 주민과의 갈등, 폭우로 인한 재해, 존속살인, 백화점 화재, 공사현장의 사고사 등 수많은 사건의 정황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실제 현장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는가.

“나는 체험 그 자체를 소설로 쓰지 않는다. 모든 체험이 문학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은 나의 직업적 생애와 무관하다.”

―문정수 기자가 다루는 일련의 사건은 ‘해망’이란 한 도시에 집중돼 있다. 한국 사회를 축약해놓은 공간이자 진실이 드러나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인 것 같은데 어떤 의도였는가.

“해망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시대와 현실의 한 부분을 담으려 했다. 해망은 내가 본 여러 도시, 여러 마을, 뒷골목 풍경들을 뒤섞어 놓은 공간이다.”

―처음으로 인터넷 연재를 했다. 혹시 댓글을 읽어본 적이 있나.

“댓글을 읽은 적은 없다. 작가와 독자는 격리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뒤엉켜서 끌어안고 떠들어대는 것은 소통이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소통을 위해서는 서로 떨어진 거리가 필요하다. 들러붙어서는 소통되지 않는다.”

―작가의 말에 “이번 일을 하면서 심한 자기혐오에 시달렸다”고 썼는데….

“개입하고 뛰어들지 못하는 자의 고통이 있었다. 매일 매일의 문장에 지쳐 있었다. 지난여름은 너무나 더웠다. 팬티가 썩을 뻔했다.”

그는 이 작품을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자 자신을 채찍질하고 다그치기 위한 방편으로 인터넷 연재를 택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에 대해 묻자 작가는 “구상이 오래된 것은 내세울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앞으로의 창작 계획은 어떠한가.

“작품 하나를 끝내면 ‘다시는 이 짓을 하지 말자’고 다짐하다가 결국은 또 하게 된다. 곧 다시 시작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있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뛰어들지 못하는 자의 고통이 있었다. 매일 매일의 문장에 지쳐 있었다. 지난여름은 너무나 더웠다. 팬티가 썩을 뻔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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