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깜’ 되는 사람이 그리도 없나

  • 입력 2009년 7월 16일 02시 58분


인사(人事) 후유증을 겪지 않은 역대 정부는 없었다. 인사가 만사라더니 인사가 망사(亡事)됐네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권력의 상징 같은 힘이지만 잘 써야 본전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성관 검찰총장 카드로 또 많이 잃었다. 재산 기부 효과가 퇴색했고, 유럽 순방 외교성과도 천 씨 낙마 파동에 묻혀버렸다. 경위야 어떻건 인사 실패의 부담은 대통령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다소 과장일지라도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이 대선 압승의 여세를 몰아가지 못한 결정적 요인도 인사다. ‘강부자 낙인’을 피하지 못한 초기 인사, 한나라당의 분열에 못질한 총선 공천, 거기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 4·29 재선거 공천이 국정 추진력을 약화시켰다.

그 다음이 지난달 21일의 검찰총장 국세청장 인사였는데 또 절반이 파탄 나버렸다. 천 씨 발탁, 단지 그것 때문에 검찰이 대혼란과 공백상태에 빠졌다. 인사 하나가 중요한 국가시스템을 흔들어버릴 수 있음을 국민은 목격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여름 중에 청와대와 내각을 꽤 큰 폭으로 물갈이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른다. 사실이라면 이 포괄인사의 무게는 검찰총장 한 사람 고르는 것보다 훨씬 무겁다. 이번에도 에러가 몇 개 생긴다면 대통령이 받을 타격과 국정에 미칠 쇼크가 정말 만만찮을 것이다.

박지원 의원한테 진 청와대 검증

천성관 인사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그 선택의 동기와 과정을 재검증하고 거기서 반성할 점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차후 인사의 성공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어째서 천성관 검증을 저토록 엉망으로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보도를 보면 ‘민정수석실의 검증시스템과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야당의 박지원 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을 정보접근 권능이 훨씬 큰 청와대 검증팀이 못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왜 세금을 쓰나.

‘천 후보자에 대해 주변 검사들에게 전화 몇 통만 해서 물어봤으면 부적격성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검찰 안에서 나올 정도로 천 씨의 행적은 꽤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만약 민정수석실이 상위 권력으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음에도 천성관 검증에 실패했다면 그 조직은 무책임한 무능력자들의 집합소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을 비서로 둔 것 자체가 대통령의 일차적 인사 실패라 할 것이다.

대통령의 비선(秘線·비밀라인)에서 천 씨를 천거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돈다. 그게 사실이고, 그래서 대통령이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천성관이라는 이름을 내려보냈다면 민정비서실이 거침없이 검증을 하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 비선을 통한 인사의 위험성은 많은 전례가 입증한다.

이 정부의 인사원칙은 여론의 풍향에 따라 반사적으로 모습을 바꾸어 온 감이 있다. 출범 초엔 ‘실용정부’를 강조하며 능력에 무게를 두고 도덕성 측면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보았다. 그러다가 도덕성 시비가 불거져 도중하차 사례가 생기고 대통령 지지도가 떨어지자 ‘재산 몇십억 이상은 곤란하다’는 기준 같지 않은 기준도 등장했다. 임기 2년차인 올해 들어서는 ‘TK(대구경북) 편중 인사’라는 비판 또는 비난이 반복적 조직적으로 확산되자 ‘TK 말고 누구 없느냐’가 새로운 원칙이 되다시피 했다. ‘지역적 지지기반 확대’라는 또 하나의 지역주의도 작용했다.

지난달의 검찰총장 국세청장 인사는 특정 지역 기피 못지않게 ‘파격성’에 방점이 찍혔다. 그 와중에 놓친 것이 능력, 조직 내 신망과 리더십, 그리고 도덕성이었다. 이런 ‘기본’의 결여를 깜짝쇼 효과로 상쇄할 수는 없었던 셈이다. 천성관 인사가 참사로 변하자 이번엔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와 ‘거짓말 안하는 사람’이 적격의 핵심 요소로 부각됐다.

거짓말 탐지劇까지 벌어질 판

머잖아 새 비서, 새 장차관 후보자 명단이 발표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깃발 아래 갖가지 잣대가 생겨나 티끌도 용납 않는 검증 굿판이 벌어지지나 않을지 궁금하다. 또 후보자의 수십 년 전 말이나 글까지 들춰내 한바탕 거짓말 탐지극(劇)이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정부는 사람 바꾸는 일로 가을까지도 진땀을 흘릴 듯싶다. 미국에선 39세의 한국계 워싱턴 교육감 미셸 리가 강력한 개혁으로 교육의 질을 바꿔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도 이렇게 능력 있고 소신 있고, 한마디로 ‘깜’이 되는 인물들로 정부를 채울 수는 없을까. 국민이 성자(聖者)만 원한다면 더욱 어려울 것이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