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폴 크루그먼]과잉저축의 복수

  • 입력 2009년 3월 10일 02시 57분


세계 금융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잘나가던 호경기 시절을 떠올려 보라. 혹자는 그 호경기 속에 이미 위기가 잉태됐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때가 그립다.

금융위기의 원인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서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현재 세계 경제위기를 초래한 한 요인에 불과하다. 새로운 종류의 악성 채무문제는 늘 발생하기 마련이다.

세계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왜 이처럼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확산되는 것일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인 벤 버냉키는 4년 전 연설에서 ‘거품 붕괴의 조짐’을 예언하는 통찰력을 발휘했다. 그는 ‘세계의 과잉저축과 미국의 재정적자’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2000년 초 미국의 급격한 무역적자 확대의 원인은 미국이 아니라 아시아 국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1990년대 중반 아시아의 신흥경제국들은 주요 자본 수입국이었다. 이들 국가는 자국의 경제개발을 위해 자금을 해외에서 조달했다. 하지만 1997, 1998년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국의 높은 저축률로 형성된 자본으로) 해외 자산을 마구 사 모으기 시작했다. 사실상 자본을 해외로 수출한 것이다. 세계는 값싼 자본으로 넘쳐나게 됐다.

그 돈의 대부분은 미국으로 흘러들어 거대한 무역적자의 원인을 제공했다. 이 돈은 유럽으로도 흘러들었다. 액수는 비록 미국보다 적지만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다.

미국 금융시장의 노회함도 한몫 거들었다. 느슨한 금융규제에 탄력 받은 미국의 은행은 가계가 손쉽게 주택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은행들은 위험을 숨기고 투자자를 조롱하는 약아빠진 수법으로 자신의 배를 불려갔다.

넓게 보면 금융에 대한 탈규제는 대규모 자본이 유입된 국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에스토니아 등 3국은 한때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과시하며 유럽의 경제모범생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 세 나라는 지금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해 있다.

이들 나라로 유입된 자본은 미국 주택 소유자들처럼 부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냈다. 자산가격이 오르고 통화가치가 강해지고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그러나 거품은 부지불식간에 터지기 마련이듯 어제의 경제 기적은 물거품이 돼 버렸다. 자산의 가치는 증발해 버리고 채무만 남았다.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가 폭락해 빚은 더 심각한 부담이 됐다.

피해는 자국 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연안지역에서 비롯된 미국의 주택버블은 자동차 같은 제품에 대한 수요를 위축시켰고 나아가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까지 큰 피해를 끼쳤다. 유럽의 버블 역시 대륙의 주변부 국가에서 발생했지만 그 영향은 제조업 강국 독일의 수출 감소로 이어져 산업생산 급감을 초래했다.

세계 경제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고 싶은가. 우리는 과잉저축의 복수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잉저축은 여전하다. 오히려 갑자기 가난해진 소비자들이 절약의 미덕을 재발견하면서 저축률은 예전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투자할 곳을 찾아 헤매던 과도한 저축자금은 세계 부동산투자 붐에서 분출구를 찾았고 결과는 세계적인 경제 폭락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지금 ‘절약의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저축으로 쌓인 자금은 세계 산업계가 투자를 위해 필요로 하는 자금 수요를 크게 뛰어넘었다. 그 결과는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 글로벌 슬럼프다.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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