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리와 사고]개념을 잘못 쓰면 글의 관점이 통째 바뀐다

  • 입력 2008년 10월 6일 02시 56분


‘남자-여자 같은 모순관계

위-아래 같은 반대관계’

대비개념을 바로 이해해야

주장 입증할 옳은 방법 선택

글을 읽거나 쓸 때는 반드시 두 가지 방법으로 ‘개념’에 접근해 봐야 합니다.

첫 번째는 유사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개념을 구분하는 방법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유사해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개념을 혼동해서 쓰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이나 권리를 남에게 맡기면서 ‘위임한다’거나 ‘양도한다’는 말을 자주 쓰게 되는데 이 두 개념을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위임한 것은 쉽게 다시 찾아올 수 있지만 양도한 것은 다시 찾아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인 논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개념을 쓰느냐에 따라 입장과 논의의 방향이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동성애와 관련된 쟁점을 예로 들어 봅시다.

동성애 논의 중 가장 기본적 쟁점은 동성애자는 ‘나쁜 사람인가’ 아니면 ‘싫은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이성애자의 관점에서 논의하는 것입니다. ‘나쁘다’와 ‘싫다’는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혼동해서 쓰는 개념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나쁘다고 평가할 때 그 사람에게 어떤 도덕적 결함이 있기 때문에 비난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으로 인해 개인적인 손해를 입었다거나 이익에 방해가 될 때 그 사람이 ‘몹시 싫다’는 의미로 나쁘다는 평가를 내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엄격히 따지면 ‘나쁘다’와 ‘싫다’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나쁘다’는 객관적이고 도덕적인 평가를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객관적 평가라는 것은 합의에 의해 결정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가 어떤 한 사람을 나쁘다고 합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그 사람을 제외한 우리 모두가 나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싫다’는 것은 주관적 취향의 차원을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옳고 그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차이에서 비롯되는 개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 나쁜 사람이라고 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처벌할 수 있는가’란 문제를 생각해 보면 차이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나쁜 사람은 반드시 처벌해야 합니다. ‘나쁘다’는 개념을 쓰는 순간 논리적으로 처벌은 당연히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나 ‘싫다’는 것이 처벌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똑같이 지각한 학생을 두고 자기가 좋아하는 학생은 봐주고 자기가 싫어하는 학생만 처벌한다면 누가 공정한 교사라고 평가하겠습니까? 동성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애자는 ‘나쁜 사람인가’ 아니면 ‘싫은 사람인가’라는 쟁점은 결국 동성애를 도덕적 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도덕과는 무관한 성적 취향의 문제로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 논의에서는 일상적으로 유사하게 사용되는 개념일지라도 어떤 개념을 쓰느냐에 따라 관점과 입장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글을 쓸 때는 개념을 엄격히 구분하여 이해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서로 대비되는 개념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규정하는 방법입니다. 서로 대비되는 두 개념이 있다면 그들은 ‘모순관계’일 수도 있고 ‘반대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모순관계는 둘 다 참일 수도, 둘 다 거짓일 수도 없는 관계입니다. 달리 말해 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거짓인 것이 모순관계입니다. 반대관계는 둘 다 참일 수는 없지만 둘 다 거짓일 수는 있는 관계입니다. 다시 말해 제3의 선택지가 있는 경우이지요.

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는 모순관계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선택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위’와 ‘아래’는 반대관계입니다. 위도 아래도 아닌 중간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비되는 개념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논증 방식을 선택할 때 특히 중요합니다. 모순관계일 경우에는 상대에 대해 반론을 펼치는 것이 곧 내 주장을 정당화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자가 아님을 밝히면 바로 여자임이 증명됩니다. 그러나 반대관계일 경우 사정이 다릅니다. 위에 없다는 것이 밝혀진다고 반드시 아래에 있음이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간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에 없다는 것만 밝혀서는 안 되고 아래에 있음을 따로 증명해야 합니다. 이처럼 쟁점이 되는 주요 대비 개념들의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내 주장을 입증하는 적절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모순인지 반대인지 애매한 대비 개념들도 있습니다. 이때에는 그 관계를 명료하게 규정하고 논의해아 합니다. 예를 들어 ‘선’과 ‘악’의 관계를 생각해 봅시다. 선악의 관계를 모순관계로 볼 수도 있고 반대관계로 볼 수도 있습니다.

모순관계로 볼 경우 ‘선’을 부정하면 바로 ‘악’이고 ‘악’을 부정하면 바로 ‘선’입니다. 반면에 반대관계로 보면 ‘선’을 부정한다고 바로 ‘악’이 되지는 않습니다. 선도 악도 아닌 중립적인 상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대비되는 개념 사이의 관계가 애매할 경우 그 관계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논의를 진행하지 않으면 혼선이 생길 수 있습니다. 대비되는 개념의 관계를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은 논술 고수가 펼쳐야할 기본 초식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