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살기 힘든 요즘, 쌈짓돈 쪼개는 기부천사 점점 늘어

  • 입력 2008년 7월 29일 03시 00분


경기 고양시 일산에 사는 주부 김민정(35) 씨는 2002년부터 사회복지단체 굿네이버스의 ‘피학대아동 후원사업’에 매달 5000원을 기부해 오고 있다.

여기에 2006년부터 ‘북한 어린이 지원사업’에도 1만 원씩 추가로 기부를 해온 김 씨는 최근 기부를 중단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김 씨는 “요즘 물가가 정말 무서울 정도로 올라 막내 아이 기저귀 값조차 부담스럽다”며 “기부액이 큰돈은 아니지만 ‘그 돈으로 과일 몇 개라도 더 살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후원을 중단해야 하나 망설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김 씨는 “내가 아이스크림 하나 안 먹으면 힘든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지?”라고 묻는 여덟 살 난 큰아들을 보며 마음을 바꿨다.

김 씨는 “엄마가 적은 돈이나마 남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 아들을 보며 후원을 차마 중단할 수 없었다”며 “서민들에게 힘든 시기이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게는 꼭 필요한 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후원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유가, 물가상승 등 여러 가지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일반 시민들의 손길이 더 잦아지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굿네이버스, 기아대책,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국내 주요 사회복지단체들의 상반기 모금액은 1230억여 원.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모인 1067억여 원에 비해 15%가량 증가한 액수.

실제로 국내 최대 규모의 사회복지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경우 1년에 네 번 이상 기부하는 정기 기부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00여 명이 증가한 25만8822명을 기록했다.

이 단체의 사회공헌협력팀 박흥철 팀장은 “올해 상반기 모금액 중 62%가 개인 후원, 38%가 기업 후원을 통해 모금됐고 1인당 평균 후원액은 1만3126원으로 집계됐다”며 “통상적으로 연중에는 개인 기부가, 연말에는 기업 기부가 많은데 상반기 총액이 증가했다는 것은 개인 기부자가 늘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개인 후원자의 증가는 예상 밖의 일. 통상 사회복지단체 정기 후원자가 매년 3∼5%씩 자연 감소하는 데다 최근의 경기 침체로 후원자가 많이 줄어들어 상반기 모금 실적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한 달에 1000∼2만 원을 후원하는 소액 후원자가 많이 늘었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기아대책의 경우 소액 후원자는 지난해 14만여 명에서 올해 17만여 명으로 20%가량 증가했다.

김은희 기아대책 경영전략본부장은 “후원이 줄어들까봐 염려했지만 오히려 소액 후원자들이 꾸준히 증가했다”며 “소액 개인 기부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기부 문화가 이제 사회적으로 확산됐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후원을 중단하는 분들도 30%가량 늘었지만 그보다 새로 후원을 시작하는 분이 더 많아 전체 후원자가 늘어난 것”이라며 “단체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소액 후원자가 매년 10% 정도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복지단체 관계자들은 5월 발생한 중국 쓰촨 성 대지진을 위한 특별 모금에 일반인의 소액 기부가 많았던 것도 소액 후원자 증가의 사례로 꼽는다.

UNICEF 박동은 사무총장 역시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다”며 “이제 한국도 후원과 나눔이 일상화되는 성숙한 기부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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