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순우]겨울에 더 빛나는 나무들

  • 입력 2005년 1월 16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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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와 언덕, 산등성이와 비탈에 서있는 나무들이 가슴을 활짝 펴고 높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렸다. 모두 하나같이 위쪽으로 손을 번쩍 들어올린 채 조용하게 서있다. 잠자는 듯 고요하다.

산을 넘어 계곡과 벌판을 따라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외로운 나목(裸木)들 사이를 쓸쓸하게 가로질러 불어간다. 하지만 조금도 숨김없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나무들은 그 어느 계절의 모습보다도 더 여유가 있고 품위도 있어 보인다. 우뚝한 나무둥치와 거칠 것 없이 사방으로 쭉쭉 뻗어 나간 곁가지들, 나무 끝 쪽의 수없이 많은 잔가지들이 한데 어우러져 더도 덜도 필요 없는 우아한 자태의 단출함과 가지런함을 보듬고 있다.

시인 조이스 킬머는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는 결코 볼 수 없으며, 오직 신만이 나무를 만들 수 있다’고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A Poem Lovely As a Tree)’라는 시에서 노래했다. 잎을 지운 겨울나무들은 오직 신만이 빚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원숙한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팔을 들어 크게 가슴을 벌리고 있는 나무들은 청잣빛으로 맑게 갠 겨울 하늘의 탁 트인 창공을 넓게 품어 안고 있다.

사람들은 나무가 겨울잠을 자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들은 기실 쉬지 않는 생명의 돌기를 계속하며 그들의 진지한 삶의 숨결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겨울이 깊어지고 추위가 강해질수록 더욱 빛나는 윤기를 머금고 있는 수피(樹皮)의 모습에서 잘 알 수 있다. 더욱 반짝거리는 표피의 기운이 마치 터져나갈 듯 팽팽하고 매끄러워 보인다.

나무들의 겨울눈 모습은 또 어떠한가. 나뭇가지들의 수많은 겨울눈이 그 크기를 키우며 도톰하게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길가 은행나무의 겨울눈이 불쑥 솟아오르고 정원의 목련도 큼직한 꽃눈들을 더욱 생기 있게 키우고 있다.

숲 속에 무리를 이루고 있는 산 나무들. 겨울의 정기를 받은 꽃눈과 잎눈들을 키워나가며 겨울의 산색을 담백하게 채색한다. 산벚나무와 참나무는 짙은 고동빛의 색조를 머금은 은은한 갈색의 기운을, 단풍나무는 잔가지들의 잔잔한 연분홍빛 노을을, 소담한 은사시나무 무리는 은회색의 밝고 맑은 빛을 각각 산록 곳곳에 뿌려놓는다.

한겨울에도 이렇게 삶의 기운이 넘쳐나는 나무들의 모습이 경이롭다. 햇빛과 공기, 물과 바람의 간소함만으로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부럽게도 느껴진다. 거추장스러운 온갖 다른 것들 없이도 숭고한 삶의 희망과 생명의 꿈을 키워나가는 나무들의 모습이 신비스러울 따름이다.

도발적이리만큼 발랄해 보이는 겨울나무들의 눈매와 그들의 반짝이는 수피에 눈길을 던져보자. 우리들이 힘겨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렵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모두들 한 번쯤은 외롭고 추운 겨울을 사는 나무들의 모습을 살펴볼 일이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모진 겨울의 아픔을 기꺼이 받아들여서 이를 이겨내고 사랑하면서 새봄이 오면 다시금 이루어낼 소생(蘇生)의 기적과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는 나무들의 겨울나기를 눈여겨 바라보자. 겨울에도 크는 나무, 옹골찬 겨울나무들의 모습이 한결 더 멋지고 아름다워 보인다. 통통한 버들개지를 키우고 있는 한겨울의 산버들이 새봄을 재촉하고 있다.

이순우 한국국제협력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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