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김원겸]도시로 나온 야생화

  • 입력 2004년 11월 8일 18시 36분


코멘트
지하철 땅 위 철길 가. 한 무더기 얽히고설킨 마른 가지 속에 작고 하얀 꽃 두어 송이가 보인다. 산구절초다. 멀리서 올라와 떠돌던 들풀이 저렇게 둥지를 틀고 마지막 봉오리까지 꽃을 피우고 있다.

몇 해 전 봄에 전북 부안군 변산 근처의 야생화 농장에 갔다가 싹이 하나씩 자라고 있는 비닐 컵 20여 개를 차 트렁크에 싣고 왔다. 신도시 중앙로 상가아파트였던 당시 우리 집은 앞쪽 베란다 밖이 1층 출입구 슬래브 지붕인데 거기다 흙을 채우고 옮겨 심었다. 그리고 어릴 적 밭 언덕에서 늘 보던 그 꽃을 기대하며 정성을 기울였다.

한여름에는 날마다 물을 주다시피 하며 길렀건만 풀들은 때가 되어도 꽃을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 가지만 위로 뻗을 뿐 꽃망울이 맺히지 않았다. 깊은 가을에서야 몇 송이가 피었지만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꽃이 아주 작고 오그라든 꽃잎이 내내 펴지지 않았다.

뭐가 잘못된 걸까. 그 다음 가을에도 마찬가지였다. 고향 풀꽃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이듬해 소음과 먼지가 덜한 곳에 짓는 아파트를 분양 받았을 때는 더 그랬다. 임시로 산 단독주택은 화분을 둘 자리도 없었다. 그래서 교외 친구 집에 맡겼다. 그루 수가 많이 늘어나 흙덩이째 뿌리를 떠내어 넓은 화분 두 개에 옮겨서 가져갔다. 물론 그것들은 거기서도 찬밥 신세였다. 처마 밑에 방치되어 겨울에는 눈을 뒤집어쓰고 얼음 덩어리가 되었다.

그랬는데도 봄이 되자 버림받은 화분마다 그 싹들이 다보록이 돋아났다. 분을 나누든지 어디다 이식을 하든지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얼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일터를 떠올렸다. 도심 땅 밑에서 변두리 땅 위 작은 역으로 근무지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승강장 끝에서부터 선로를 따라 그것을 심을 공간이 있었다. 그래서 라일락 향기가 진하던 어느 날 그 천덕꾸러기들을 차에 싣고 와 쑥밭을 개간해 옮겨 심었다.

그런데 유월 어느 날 시련이 닥쳤다. 밤사이 밭이 엉망이 되었다. 손길 주는 만큼 잘 자라던 것들을 케이블 설치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모조리 짓밟아 놓았다. 허탈했고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운명이려니 하고 밭을 그대로 버리는 수밖에.

그랬는데 그것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살아남은 몇 그루가 무성한 풀 속에서 작고 볼품없으나마 꽃을 피웠고 봄볕을 받더니 심었던 자리에서 싹이 하나둘 돋아났다. 모종을 떠낸 화분들에도 많은 싹이 솟고 있었다. 다시 밭을 꾸미지 않을 수 없었다. 내친김이니 한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어쨌든 맘을 열었는지 적응이 되었는지 태풍 철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모든 그루, 여러 갈래로 갈라진 가지 끝마다 꽃망울이 맺혔다. 그리고 한 주일쯤 지나서부터 하나둘 연분홍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렇게 흐드러졌다. 서너 평 공간이 참 볼 만했다. 여전히 꽃잎이 얇고 뒤틀린 것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꽃은 제 크기인 것 같아 이제야 터를 잡았나 싶었다.

자못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 풀, 이제 야생화가 아니다. 내가 다른 데로 전출을 가면 누가 돌보나. 신의 정원에서 인공의 공간으로 납치당한 풀꽃들, 한두 번 즐거움을 주고 사라지는 그런 신세가 되지나 않을는지.

김원겸 동요작사가·서울시지하철공사 직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