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행정수도’에서 遷都로 바뀌었다면

  • 입력 2004년 6월 9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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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잠정 확정한 85개 국가기관 이전계획에 따르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수도 이전은 ‘600여년 만의 천도(遷都)’가 명백하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는 물론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헌법기관이 모두 이전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줄곧 ‘행정수도 이전’임을 강조해 왔으나 추진위 안(案)은 누가 봐도 천도다. 김안제 추진위원장도 “입법부 사법부가 다 가게 되면 천도가 맞는다”고 시인했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수도 이전이 핵심 대선공약이고,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됐으므로 사실상 국민의 동의를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과 천도는 180도 다르다. 국회에서 관련 특별법이 통과된 것만으로 정당성을 인정받기는 어렵다. 17대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충청권 표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정략적으로 이 법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대선 당시 4조∼6조원이면 된다던 이전 비용도 45조원으로 늘어났다. 일각에서는 50조∼100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추진위조차 청사건립 및 이사비용만 3조4000억원이 든다고 추산한다. 신도시 건설에 8조원, 문화 비전에 15조원, 농어촌에 110조원, 자주국방에 20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이 정부가 어떻게 천문학적 천도비용을 조달한다는 말인가.

브라질은 수도 이전을 확정하는 데 134년이 걸렸고, 호주는 입지 선정에만 10년을 보냈다. 수도 이전이 국민의 축복 속에서 진행되고, 대통령의 빛나는 업적으로 기록되기를 바랄수록 정당성과 합법성 및 국민적 동의를 우선 획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천도를 밀어붙이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국력 낭비와 국론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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