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세이]고은미/痛風, 식이요법 만으론 안된다

  • 입력 2003년 11월 10일 18시 33분


코멘트
통풍이란 병은 혈액 속의 요산치가 지나치게 증가해 관절염을 일으키는 병이다. 유럽의 왕족들에게 많이 발생해 ‘왕의 병’이라 불리기도 했고 워낙 통증이 심해 ‘병 중의 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한동안 통풍은 부자나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걸리는 병(에라스무스나 칸트도 통풍 환자였다고 한다)으로 생각되기도 했지만, 물론 요즘 와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필자가 전공의 시절이던 80년대에 통풍은 대학병원에서 어쩌다 가끔 보는 질환이었다. 당시 많은 의사들은 통풍이 우리나라에 드문 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외래 환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병이 통풍이다. 그만큼 과거에 비해 통풍이 늘어났다고도 할 수 있고, 어찌 보면 과거에도 통풍 환자가 꽤 있었는데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통풍이 흔해지다 보니 이에 비례해 잘못된 지식도 많아졌다. 흔한 오해 중의 하나가 피검사를 해서 요산치가 높으면 통풍이라고 믿는 경우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요산치가 높다며 스스로 통풍 진단을 붙여온 어느 할아버지께 요산치가 높다고 해서 통풍은 아니라고 말씀드렸다가 혼난 적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통풍이란 요산치가 높은 사람들 중 일부에게서 관절염이 발생한 것을 말하며 정확한 진단은 관절염이 생긴 부위에서 관절액을 뽑아 편광 현미경으로 요산 결정을 확인해야 한다. 물론 이런 검사가 불가능한 경우 과거에 아팠던 병력이나 약물 치료에 대한 반응으로 진단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오해는 약 복용에 관한 것이다. 통풍 발작이 한번만 있어도 무조건 약을 계속 복용하거나, 반대로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아플 때만 복용하는 잘못된 자가 처방을 흔히 보게 된다. 그러나 통풍 약 처방의 원칙은 통풍 발작이 한두 번만 있었다면 굳이 약을 계속 먹지 않고 기다려 보아도 되고, 서너 번 반복된다면 앞으로 심해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관절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식사 조절에 대해서도 많은 오해가 있다. 통풍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식이요법’일 정도로 식사 조절이 강조되는데, 요산 조절을 위해 식이요법을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정말 먹을 음식이 없다. 따라서 환자 본인뿐 아니라 식사를 준비하는 가족까지 함께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실은 아무리 철저하게 식사조절을 해도 혈중 요산치는 크게 감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의 요산치가 많이 높다면 아무리 식사 조절을 해도 결국 요산강하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니 적절하게 요산 조절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경우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음식 섭취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롭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하여 식이요법의 의미가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술은 계속 피해야 한다. 술을 마시면 요산치가 갑자기 증가해 급성 통풍 발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통풍에 잘 동반되는 비만 고지혈증 당뇨 고혈압 등의 조절을 위한 식이요법은 지속하는 것이 좋다.

통풍은 필자가 좋아하는 병 중의 하나다. 병을 좋아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적절하게 치료하면 효과를 많이 보는 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은 아예 통풍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통풍 발생과 관련이 있는 비만이나 지나친 음주는 피하고 볼 일이다.

고은미 성균관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류마티스내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