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15>배우는 마음, 겸허한 말씨

  • 입력 2003년 5월 16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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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야훼께서 나에게 말솜씨를 익혀주시며 고달픈 자를 격려할 줄 알게 다정한 말을 가르쳐 주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배우는 마음으로 듣게 하신다.’(이사야 50:4) 이는 내가 즐겨 외우는 성구(聖句)이다. 이 내용처럼 ‘배우는 마음으로 듣게 하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말하게 하소서’ 하는 기도를 바치며 하루를 시작하는 요즘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종교인들, 특히 남을 가르치는 일에 몸 담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잘못하기 쉬운 것 중의 하나는 사석에서도 입만 열면 남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말씨를 쓰는 것이다.

빼어난 설교로 명성이 높은 분들의 말을 듣다가도 그 내용은 훌륭하지만 표현방법에 겸허함이 부족해서 실망한 적이 많다. 삶의 체험이나 신앙을 이야기할 적에도 확신에 차 있으되 겸양하고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말씨를 써야 하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나 지나치게 당당하고 자신의 뜻만 고집하는 오만한 말씨는 거북하고 부담스럽다. 가끔 지인들이 내게 삶의 지침이 될 만한 말이나 글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어서 좋은 말이나 글을 수첩에 따로 모아두곤 한다. 그러나 책에서 찾은 좋은 말들 조차 나 자신에게 적용시키려는 노력보다는 남에게 인용할 생각부터 먼저 하는 내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있다.

우리 모두 남을 가르치려 하기 전에 먼저 정성스럽게 경청하는 자세를 지니자. 나무라기보다는 격려하고, 명령하기보다는 권면하는 겸손한 말씨를 날마다 새롭게 연습해야 하리라.

요즘처럼 거칠고 무례하고 날카로운 말씨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종교인들만이라도 솔선수범하여 이웃에게 꽃 한 송이 건네는 고운 마음, 봄바람을 실어주는 부드러운 마음으로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는 성전에 바치는 기도 이상으로 향기로운 기도가 되며, 삶 속에서 빛나는 사랑의 기도로 주위를 환히 밝힐 것이다.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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