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교수의 뇌의 신비]보톡스의 '용도 변경'

  • 입력 2003년 3월 16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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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성형외과나 피부과 간판에서는 ‘보톡스로 주름을 제거하자’는 문구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보톡스는 사실 심각한 증세를 일으키는 무서운 독이다. 보톡스는 혐기성(嫌氣性) 세균인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의 독을 순수 결정체로 분리한 약품이다.

보툴리눔 독에는 A에서 G까지 7가지 형태가 있는데 이중 A, B, E, F가 사람에게 중독을 일으킨다. 보톡스로 개발돼 치료에 사용되는 독은 A형이다.

보툴리눔 독소는 신경마비 물질이다. 신경세포가 또 다른 신경세포 혹은 근육과 연결될 때 신경세포의 말단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신경전달물질은 신경세포의 끝 부분에 주머니로 싸여 있는데 이것이 밖으로 분비되기 위해서는 주머니가 신경 세포의 맨 끝으로 이동한 후, 주머니의 벽이 신경세포의 벽에 붙어야 한다.

보툴리눔 독소는 주머니가 신경세포의 벽에 붙는 마지막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억제한다. 이렇게 되면 그 신경의 지배를 받는 근육이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영리한 학자들은 이런 보툴리눔 독소를 응용해 거꾸로 신경계 질환을 치료하려는 생각을 했다. 근육을 마비시키는 독이 치료 효과를 가질 수 있는 병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바로 근육에 지나치게 힘이 주어지는 병, 즉 근긴장이상증이다.

근긴장이상증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몸의 일부에만 긴장이 심해지는 국소성 긴장이상증이 가장 흔하며, 또한 보톡스에 잘 반응한다. 예컨대 반쪽 얼굴 근육에 저절로 힘이 주어지는 안면 경련, 저절로 양쪽 눈이 꽉 감기는 안검 연축, 그리고 목 근육에 힘이 주어져 한쪽으로 목이 돌아가는 사경 환자의 긴장된 근육에 보톡스를 주사하면 증세가 좋아지게 된다. 하지만 보톡스 효과는 몇 달밖에 지속되지 못하므로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보톡스가 원래 신경과에서 사용하는 근긴장이상증 치료약이라는 사실은 모른 채 주름살 펴는 약으로만 알고 있다.

사실 보톡스가 주름살 펴는 데 사용된 연유도 안면 경련으로 보톡스 주사를 맞은 사람에게서 주름살도 펴진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신경과 의사 입장에서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보툴리눔 균 입장에서는 더 기가 막힐 노릇일 것이다. 보툴리눔은 일찍이 1895년부터 신경을 마비시키는 무서운 균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들 이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으니 말이다.

울산대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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