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미일/6. 25 납북인사들의 역사 복원을

  • 입력 2002년 2월 6일 17시 49분


통일부가 매년 발간하는 ‘북한인권백서’는 수년째 납북된 한국인의 수를 400명대로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개 납북어부가 포함된 487명으로 기록해 놓았다. 언론에서도 연일 이 수만을 반복하고 있어 6·25전쟁에서 납북된 사람들을 가족으로 둔 우리로서는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다.

1950년 전후 몇 년간은 이들의 생사나 송환문제가 국가적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으나 그 후 50년 동안 정부의 무관심과 직무유기로 그분들의 문제는 철저히 사장돼 있는 상태다. 필자의 부친은 1950년 전쟁이 나던 해 당시 서울 청량리에서 유기공장을 운영하던 중소기업인이었다. 그 해 8월 정치부 요원이라는 사람들이 와서 잠깐 가자고 해 데려간 후 종무소식이었고, 어머니와 우리 세 자매는 지금껏 아버지를 잊지 않고 기다려 왔다.

그렇게 사라져간 분들이 얼마나 될까. 통계청에서 나온 6·25 피해상황 1953년 제2차 조사통계에는 납북자수가 8만4532명으로 집계돼 있다. 필자는 이 사실을 알고 그 수가 많음에 우선 놀랐고, 그분들이 너무 철저한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는 사실에 또 놀랐다.

필자는 재작년부터 뜻 있는 6·25 납북자 가족들과 힘을 합해 가족을 찾고,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 북한은 ‘납북자는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남한 정부는 남의 일처럼 방치해 두었는데 우리 가족들이라도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6·25 납북자들 중 상당히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초석을 다지는 데 기여한 분들이다.

우리는 이분들을 현대사의 중요한 자리로 모셔오기 위해 실질적인 증거자료를 모으는 데 우선 주력해오고 있다. 어느 고서 장서가가 전쟁 중이었던 1950년 12월 1일 ‘공보처 통계국’에서 작성했다는 납치, 행불, 피살자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실로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듯하게 줄을 긋고 깔끔한 글씨체로 또박또박 성명, 성별, 연령, 직업, 피해월일, 피해유형, 피해장소, 약력, 주소 순으로 172면에 걸쳐 기록해 놓은 4616명의 명단을 받아들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그중 납북자수는 총 2438명이었다. 6·25전쟁 납북인사에 관한 최초의 정부자료로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았으므로 사재를 털어서라도 사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역시 민간단체의 노력에는 큰 제약과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국체(國體)를 유지하고, 국가의 위신을 세우는 의무가 일차적으로 정부에 주어져 있는 것이라면 정부의 노력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를 바로 세운다느니 제2의 건국을 한다느니 하면서 공염불로 공연한 돈만 버릴 것이 아니다. 다행히 우리의 자료가 나온 후 8만여명의 명단도 발견됐다고 한다.

역사는 기록하고 보존하는 데서 시작된다. 6·25전쟁 납북 인사들에 관한 기록을 찾고 보존하는 일 등을 방기하고서 우리 현대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세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미일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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