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적토마를 보내며

  • 입력 2001년 8월 10일 15시 27분


적토마 고정운. 지난 8월 5일 그가 그라운드를 떠났다. 먼저 89년 데뷔 이후 13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최선을 다한 플레이로 많은 사람들에게 축구의 감동과 투혼을 맛보게 해준 그에게 감사를 표한다. 항상 마치 코뿔소처럼 저돌적으로 그라운드를 헤집고 다니던 파워 넘치던 고정운, 이제는 더 이상 선수로서의 그의 모습은 볼 수 없겠지만 언젠가 능력 있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 그날을 기대해 본다.

프로필

수상경력

성 명 : 고정운 (高正云)

생년월일 : 1966년 6월 27일

신체조건 : 177cm, 77kg

혈액형 : A 형

출생지 : 전북 완주

출신교 : 건국대 (무역학과)

소 속 : 포항 스틸러스

별 명 : 적토마, 코뿔소

'89 프로축구 신인상

'91 프로축구 베스트11상(FW)

'94 프로축구 MVP

'94 프로축구 도움상

'94 프로축구 베스트11상(MF)

'95 프로축구 베스트11상(MF)

'99 프로축구 베스트11상(MF)

통산 230경기 출장 55골 48도움 기록

이상은 고정운의 약력과 그 동안의 국내 프로축구에서의 수상경력이다. 89년 신인상을 받으며(4골 8도움) 화려하게 등장하여 군복무기간으로 보이는 92, 93시즌과 일본에서 활약하던 97, 98시즌을 제외하고는, 99년 9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꾸준하게 돋보이는 활약을 보여왔다.

그러나 국내리그보다는 국가대표 경기에 훨씬 관심이 많은 우리 나라의 축구문화의 특성상 정작 일반인들의 가슴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무래도 94년 미국 월드컵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조 예선리그 최종전이었던 독일전에서의 그의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다. 30도를 우습게 넘어버리는 무더운 달라스의 코튼볼 구장에서 전후반 내내 지칠 줄 모르는 엄청난 체력을 바탕으로 독일 진영을 유린하던 그의 모습. 마치 한 마리 코뿔소를 연상시키며 왼쪽을 헤집다가 어느새 오른쪽으로, 그리고 또 다시 왼쪽에서… 어느 방향으로 공이 튀건 공이 가는 곳에는 항상 그가 있었고, 그런 강한 체력과 투혼에 가까운 정신력을 바탕으로 많은 찬스를 만들어 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어이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의 강한 체력이었고, 비록 그 경기를 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게 하는 감동적인 투혼이었다.

그런 그가 올스타전에 모인 많은 팬들의 아쉬움과 또 그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자리에서 성대하게 은퇴식을 치렀다. 연맹 추천이라는 특별 케이스로 참가한 올스타전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자신들의 영웅의 마지막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경기 내내 스탠드를 지켰던 포항의 선수들, 그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건네주며 아쉬움에 못 이겨 큰절을 하는 서포터즈의 모습은 마치 ‘그 동안 우리 곁에서 있어주어서 너무 감사했다’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또한 그런 자리를 맞이하는 고정운의 눈가에 고인 선 굵은 사내의 눈물은, 그 자리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알 수 없는 뭉클함과 함께 앞으로도 축구장을 찾게 될 또 하나의 이유를 던져주었다.

더 이상 그의 선수로서의 모습을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날 고정운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큰 족적을 남겼던 K-league 통산 득점 1위인 윤상철이나 김주성 등의 선수를 보낼 때와는 달리 이번엔 제대로 대접을 해서 보내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그래도 마음이 좀 편안하다. 지금껏 그가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감동과 투혼에 대해 마지막에 조금이라도 보상해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사실 그 동안 우리는 우리의 영웅들을 보내는 모습에 있어서 너무나 인색했다. 아니,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윤상철에 비하면 비록 속초에서나마 은퇴경기를 가졌던 김주성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윤상철의 경우 비록 국가대표로서의 화려함은 없다하나 88시즌부터 97시즌까지 한 팀(안양 LG)에서 10년간이나 뛰면서 아직도 K-league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는 통산 101골(31도움)을 기록했지만, 97시즌이 끝나자 변변한 은퇴경기는커녕 은퇴한다는 신문기사 몇 줄만 달랑 남긴 채 그렇게 그는 축구판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한 지나간 생각해 보면 선수 개인으로나 선진화된 축구문화의 정착이라는 대명제로 보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일부러 없는 스타도 만들어 내야 할 구단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스타들을 그렇게 버려왔던 것이다. 자신들에게 무엇이 소중한지를 잘 몰랐던 것이다. 또한 많은 축구팬들 또한 우리 선수들이 아무리 뛰어난 활약과 기량을 갖추었다 해도 그들을 우리들의 스타로서 받아들이고 그 존재를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외국의 유력 플레이어와의 격차를 지적하며, 어차피 국내용이나 아시아권에서나 통하는 삼류에 불과하다는 자조적인 시각으로 우리 곁에 있던 그들을 깎아 내리고는 했다.

그런 때가 불과 몇 년 전이지만 인터넷과 케이블, 위성 티비 등 각종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유럽의 선진 축구문화가 많이 유입된 것인지 축구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연맹과 구단측의 마인드도 당시보다는 많이 발전했다. 이제는 우리도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또 그런 그들을 그들의 위상에 맞게 제대로 떠나 보내주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K-league와 축구문화 정착과 그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고정운의 경우는 다행히도 제대로 그를 보내는데 성공(?)했지만 이런 문화가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하며 결코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더 이상 일세를 풍미하고도 은퇴가 아닌 사실상의 퇴출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스타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디 이번의 고정운 선수의 은퇴식이 우리가 가진 영웅을 스스로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축구문화로 정착되는 밀알이 되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13년 동안 우리의 곁에서 많은 감동과 열정을 알게 해 주었던 고정운 선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