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디즈니, 그 속엔 무서운 '음모'가 있다

  • 입력 2001년 6월 15일 18시 51분


△'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 헨리 지루 지음/성기완 옮김/224쪽 8000원/아침이슬△

디즈니랜드는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신비와 모험의 세계’다. 백설공주가 살았을 법한 아름다운 성을 구경하고, 알라딘이 타고 다녔다는 마법의 양탄자를 본따 만든 놀이기구를 타고 잠시나마 하늘을 나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질 때면 그야말로 ‘별천지’가 따로 없다. 고통과 괴로움은 사라지고 순수한 사랑으로 충만한 세상. 디즈니랜드는 아이들에게 하나의 완전무결한 ‘천국’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생각이 좀 다르다. 디즈니랜드는 우리의 어릴적 순수함이 산산히 부서져 안치된 ‘납골당’이며 일상의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해마다 찾아가는 ‘순례지’라고 정의한다. 디즈니의 상업적 성공은 어린이들의 환상을 최대한 착취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아이 키우는 부모 입장에선 눈이 휘둥그레해 질 일이다. 아이의 품에 안겨 웃고 있는 미키마우스는 지금도 아이의 해맑은 순수함을 갉아먹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이 책에 따르면 디즈니의 가장 큰 위험성은 아이들에게 왜곡된 현실인식과 그릇된 욕망을 채워준다는 데 있다.

디즈니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대립, 사회적 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곳곳에 위치한 디즈니 테마 공원에는 깨끗한 거리, 동화 속에나 있을 법한 예쁜 집, 잘 가꿔진 화단, 그리고 사고 싶은 물건들로 가득찬 상점들 뿐이다.

누구도 그 평화를 깨뜨릴 수 없는 철옹성과 같은 이곳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은 삶의 이상향을 설정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소비로 행복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믿는 철저한 자본주의의 세계다. 미래의 소비주체인 어린이들을 자본주의의 예찬론자로 양성하는 것만이 디즈니가 영원히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디즈니는 백인우월주의와 여성차별주의 등 기존 사회의 보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애니메이션 ‘알라딘’에서 ‘나쁜’ 아랍인들은 거센 외국어 억양을 구사하는 반면 서구화된 자스민과 알라딘은 미국식 표준 영어로 말한다. ‘라이온 킹’에서도 마찬가지다. 악의 상징인 ‘스카’는 선한 사자들보다 털이 검다. ‘인어공주’에 등장하는 아리엘은 부모의 통제에 대항해 주체적 삶을 살고자 하는 독립심 강한 여성으로 묘사되지만 종국에는 사랑을 위해 목소리를 포기하는 의존적 여인상으로 회귀한다.

이를 통해 디즈니는 20세기 전후 미국이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던 시절의 모습을 사람들로 하여금 끝없이 추억하게끔 조장한다. 자유 방임적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던 그 시절 백인 중산층 가정의 행복하고 단란한 삶에 대한 동경을 상업적 측면과 결합시켜 소비를 극대화시키려는 의도에서다.

이렇듯 엄청난 모순과 음모로 가득한 ‘디즈니 이데올로기’가 지금까지 비난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추악한 상업주의를 ‘순수함’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상표화된 디즈니 세계는 비평가들의 검토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에서 아동문화를 구축하는 하나의 기초기관으로서 디즈니에 대한 건전한 의구심과 비판적인 논쟁은 필수적이라고 역설한다.

월트 디즈니는 말했다. “아이들의 마음은 백지와도 같다. 태어나서 처음 몇 년 동안 많은 것들이 백지 위에 기록될 것이고 그 내용은 아이의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고. 디즈니 할아버지는 살아생전 백지 위에 꿈과 희망을 그려넣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현재 ‘순종적 소비자’가 될 것을 종용하는 음모로 백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고 이 책은 경고한다.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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