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떠나간 것들을 기억하며…미술,영화,건축

  • 입력 2002년 11월 18일 17시 53분


가정집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들어선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순옥전./사진제공 대림미술관
가정집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들어선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순옥전./사진제공 대림미술관
《오늘은 건축비평, 영화비평, 미술비평 등 세 글을 싣습니다. 대한민국건축대전과 부산국제영화제라는 국내 최대의 행사는 우리의 건축과 영화의 현상을 읽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미술의 경우는 매우 독특하고 의미 있는 전시회가 우리의 주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동선 교수는 아주 짧은 글이지만 도시일상의 재구축이라는 주제의 건축대전을 조망하면서 일상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축을 다시 주목하며 건축에서도 리얼리즘이 가능한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김소영 교수는 올해로 7회째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가운데 김응수 감독의 ‘욕망’과 여성감독 박찬옥의 ‘질투는 나의 힘’을 욕망의 존재론에 대한 실험으로 규정하고 거기서 무섭도록 냉정한 현대욕망의 초상을 읽습니다. 강태희 교수는 미술관 안에 집을 지어놓고 사진, 오브제, 드로잉, 슬라이드, 필름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떠나가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따스하게 기억하는 우순옥의 넉넉한 관조의 세계를 전하면서 비평도 시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김윤철·연극원교수>》

▼아무 것도 아닌 것, 이 거품은…미술관에 옛 집 흔적 전시한 우순옥, 그 관조의 세계▼

지금 대림 미술관에는 우순옥이 지은 집이 한 채 있다. 그것은 지금의 미술관으로 개축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집에 대한 기억의 공간이다. 사람들이 떠나가고 껍질만 남은 빈집에서 그는 무심한 햇살과 밤이면 어김없이 되살아나는 불빛을 만났고 그 빛들을 매개로 다시 집을 지었다. 한때 사람들의 삶을 보듬었던 스러진 집들을 기억하며.

만 일년만에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갱생한 집은 그러나 존재의 흔적보다는 ‘부재 하는 모든 것에 대한 알레고리’로 이루어졌다. 부드러운 흑백 톤의 정갈한 사진들은 사라진 집의 유일한 인덱스이지만 이들보다 더 확실하게 집의 부재를 말해주는 것은 없다. 그것은 롤랑 바르뜨의 ‘한때 거기 있었음’의 인증이자 대상의 부재를 전제로 하는 기호의 원초적 특성을 환기해줄 뿐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철제 프레임에 매달려 영롱한 빛을 발하는 샹들리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집의 유일한 유물인 이들은 미술 오브제로 그 문맥이 전치 되어 사라진 집의 알리바이로 존재할 뿐이다.

작가의 전시도록만 비치되어있는 텅 빈 서재에는 거대한 거울이 또 하나의 사라짐을 반사한다.

흰 벽면을 가득 채운 드로잉 ‘나는 당신을 기억합니다’도 제목과 달리 부재에 대한 상념으로 가득하다. 떠난 가족을 빼고는 유일하게 사라진 장소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을 가진 작가는 프루스트의 마들렌느를 상기하며 커튼과 계단 등을 그려 넣고 글을 써놓았다. 푸른색 파스텔로 재현된 집의 단편적인 모습들은 “지금. 여기. 사라지는. 빛! 그 사이들. 부재 하는 모든 것에 대한 알레고리. 장소도 시간도 아닌” 등의 낙서와 어우러져 존재와 부재의 시공을 증언한다.

그러나 작가에게는 이 집의 마들렌느는 결국은 세상에 편재하는 비물질의 빛일 뿐이며, 이런 빛에 대한 언급은 총 240장의 슬라이드가 시차를 두고 3층으로 겹쳐 투사되는 슬라이드 프로젝션을 통해 서정적으로 구체화되고있다. 통로에 친 커튼을 통해 여과된 햇볕과 벽면에 투사되는 모노크롬 빛의 교차는 세상의 모든 빛들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3분 짜리 짧은 필름 ‘당신을 위해서’에서는 얼굴을 가린 작가가 관객에게 천천히 촛불과 꽃을 건네고 또 빈손을 열어 보임으로써 삶과 공간의 의미를 결산하고 있다.

강태희

이처럼 작가는 과거와 현재, 존재와 부재의 양극을 왕복하면서 사라진 집을 애도하지도, 또한 망각하지도 않는다. 그가 내비치는 것은 종국에는 변화하고 스러지는 모든 것에 대한 따스한 기억의 시선이면서 동시에 생성과 소멸의 이치를 끌어안는 넉넉한 관조의 그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그의 집을 손쉬운 감상이나 추억으로부터 건져 올려 보는 이의 마음에 시간과 공간의 형상에 대한 촘촘한 상념의 그물을 짜고 있는 것이다.

벽면에 낙서된 ‘rien, cette ´ecume’ (아무 것도 아닌 것, 이 거품은)은 말라르메의 시의 한 구절이다. 결국 그런 것이다. 우순옥이 지은 이 기억의 집도 모든 떠나가는 것들을 향해 건네지는 빛으로 빚은 술잔일 뿐이다.

강태희 미술원교수·미술평론가

▼제 7회 부산 국제 영화제 ‘욕망’‘질투는 나의 힘’눈길끌어▼

욕망과 질투라는 까다로운 감성을 다룬 한국영화‘욕망’(위)과 ‘질투는 나의 힘’./동아일보 자료사진

제7회 부산 국제 영화제를 찾았다. 개막식 다음 날인 11월 15일.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대는 남포동 영화의 거리에 서 있었다. 어디선가 갑자기 군인들이 뛰쳐나왔다. 사람들이 경악하며 물러섰다. 그러나 개막작 ‘해안선’ 홍보를 위한 퍼포먼스임이 밝혀진 순간 환성이 터졌다. 영화제, 그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며칠을 관객들과 함께 거리의 소란과 극장의 어둠에 묻혀 지냈다. 그러던 어느 아침, 숙소 뒤 작은 동산을 찾았다. 멀리 해운대 바다와 메가 박스 극장이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아마도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바다와 극장이 함께 하는 풍경일 것이다. 마침 불어오는 산바람엔 바다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된 2편의 한국 영화가 남긴 강렬한 여운이 그 바람 속에 있었다.

김응수 감독의 ‘욕망’과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 제목이 암시하듯 2편의 영화 모두 욕망과 질투라는 까다로운 감정의 흐름을 다루고 있다. 김응수 감독은 1997년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라는 인상적 데뷔작 이후 5년의 준비 끝에 ‘욕망’을 완성했다. 한국에서는 HD(High Definition) 카메라로 촬영한 첫 장편 영화라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에 관한 궁금증도 갖게 했던 영화다. 최근 100억이 넘어간 한국형 블록버스터와는 비교 불가능한 저 예산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그러나 ‘욕망’의 이미지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우아하게 세공되어 있다. 매너리즘 회화를 서울이라는 도시의 공간에 펼쳐놓은 듯 골목과 큰길들은 영화 속에서 초 현실에 가까운 추상적 비(非) 장소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추상화된 비 장소는 서로 얽힌 세 인물들의 욕망, 그 모호하고도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무대다. 거기서 세명의 인물들은 “나는 존재한다. 네가 욕망 하는 것을 욕망 함으로써”라는 욕망의 존재론을 실험한다. 즉, 아내는 남편의 욕망의 대상인 남성을 욕망하고, 그 남성은 다시 자신의 연인인 남편의 아내를 따라다닌다. 이 욕망의 삼각형의 핵은 나와 너를 매개하는 제3자가 가지는 모호한 매력에 대한 미칠 듯한 궁금증이다.

이것은 여성 감독인 박찬옥의 첫 작품인 ‘질투는 나의 힘’에서 더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한 평범하고 유순한 대학원생 이원상(박해일)이 한 출판사의 편집장 한윤식(문성근 역)에게 애인을 두 번씩이나 빼앗긴다. 왜 자신의 여자들은 그 남자를 욕망하는 것일까? 그래서 이원상은 한윤식의 주변을 맴돌다 종국엔 그의 집에 군식구로 들어간다.

김소영

이러한 욕망과 질투의 이야기는 한국 영화에서는 새로운 시도다. 그렇다면 왜 두 명의 재능 있는 젊은 감독들이 동시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일까? 이 욕망의 삼각형은 이전엔 결혼이라는 제도적 선택으로 그 표면적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두 영화는 이제 그 결혼 안에서 새로운 욕망의 삼각형이 만들어짐을 보여준다. 이때 욕망은 해방의 힘을 갖기는커녕, 오히려 영화 속 인물들을 그 제도의 조용한 공모자로 추락시킨다. 일탈을 꿈꾸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주인들에게 노예처럼 되돌아온다. 젊은 감독들이 그려내는 무섭도록 냉정한 현대 욕망의 초상이다.

김소영 영상원 교수·영화평론가

▼건축에서도 리얼리즘이 가능한걸까 ▼

음악, 미술, 연극, 영화와 같은 예술과 달리 건축에서 리얼리즘이라는 말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건축이 현실과 유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건축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체계를 갖고 있으며 그 체계를 통하여 현실을 반영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제21회 대한민국 건축대전(11∼19일·예술의 전당 미술관)의 일반공모전은 그 화두를 ‘도시일상의 재구축’으로 삼았다. 비록 ‘아름답지 못한 건물이라도 그 하나 하나의 건물은 많은 사람의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도시의 기억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1002점의 출품작들로부터 3차에 걸친 심사과정을 거쳐서 113점(대상 1점, 우수상 3점, 특선 6점)이 선정됐는데 이 입선작들이 다룬 주제는 우리가 쉽게 접하는 시장, 주택에서부터 쪽방, 노점상, 책방, 소방서, 납골당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의 버려진 땅과 예사로 여긴 일상을 재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일상을 재발견했을지는 몰라도, 일상에서 프로그램을 찾고 그것을 재구축하는 데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상을 재구축한 결과물은 통상 비일상적인 것이 되기 쉬운데, 일상이라는 주제와 비일상적인 결과물의 관계를 미리부터 염두에 두고 작업한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우동선

하지만 공공성이나 윤리를 묻는 지난 두 해의 주제보다 일상성을 묻는 이번의 주제가 건축을 보다 친근한 것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건축의 외연을 확장한 것은 틀림없다. 마지막까지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통조림을 그린 앤디 워홀의 그림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가장 기본이 되는 ‘수(數)의 무게’와 정면으로 승부한 작품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우동선 미술원 교수·건축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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