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국토정책]公기업 "돈벌자" 초대형사업 남발

  • 입력 2001년 2월 26일 18시 47분


경부고속도로 양재동~수원 구간 양쪽에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양재동~수원 구간 양쪽에
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인기 드라마 ‘왕건’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후백제왕 견훤이 큰아들 신검에 의해 석 달 동안 갇혔던 곳, 전북 김제시의 금산사. 모악산 기슭에 있는 이 사찰은 국보 62호인 미륵전과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등 대형 불상, 점판암을 쌓은 육각다층석탑 등과 같은 보물급 문화재가 즐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금산사를 찾아 산길을 오르다 보면 절 입구에 잡초만 무성한 채 5층 높이의 골조만 올라간 건물 한 채가 흉측스럽게 서 있는 2만여평 규모의 공터가 눈에 띈다. 93년 김제시가 설립한 김제개발공사가 종합레저타운을 만든다며 개발에 나섰다가 금산사와 환경단체의 반발로 97년 사업을 중단한 뒤 지금까지 방치한 곳이다.

금산사의 한 스님은 “이곳은 울창한 숲이었던 곳”이라며 “김제시에 복구를 요청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 1800여명의 한국토지공사가 경남 양산시 중부동 일대에 조성 중인 ‘양산 신도시’는 벌써부터 초대형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 싣는 순서▼

1. 정치논리에 춤추는 개발
2. '누더기' 법과 제도
3. 불도저 동원=시장 당선?
4. 일단 파헤쳐야 조직이 산다?
5. 밀어붙이면 되더라-국민도 책임
6. 크게 보자, 멀리 보자

총사업비 2조2500여억원, 면적 323만평 규모로 여의도의 4배가 훨씬 넘는 양산 신도시는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 집권 초인 94년 부산지역의 택지난 해소라는 명목으로 착수됐다. 1차분(70만평)은 99년말 완공됐고 2차분(95만평)은 2003년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그러나 1,2차 사업지 중 분양된 곳은 24%에 불과하고 사업일정도 당초 2003년 완공에서 2005년 완공으로 늦춰지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미 2000억원 정도의 적자가 발생한 상태.

그런데도 토공은 사업비가 1,2차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는 3차 사업을 지속할 방침이다. “3차분(158만평)을 포기하면 이미 투입한 토지매입비용과 각종 기반시설 건설비용을 고스란히 날리지만 3차 사업지를 조성하면서 분양이 이뤄지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

공기업 주요 공사 현황

구 분설립시기납입자본금(억원)직원(명)주력업무
주택공사62년 7월37,0222,991아파트분양, 임대주택 관리
토지공사75년 3월 17,3961,782토지 및 산업단지 개발 및 분양
수자원공사67년 11월44,2833,159상수도 댐 건설 및 관리
농업기반공사2000년 1월10,3036,012농지 조성 및 물 관리

이처럼 공기업들이 무분별하게 개발사업을 남발하게 된 데는 ‘일감을 만들어야만 살아남는다’는 생존의 논리가 깔려 있다. 해수면 매립을 주력으로 하는 농업기반공사가 무리하게 시화호의 담수화를 시도하다 최근 포기를 선언한 것이나, 수자원공사가 영월에 동강댐 설치를 추진했다가 여론의 반발에 밀려 사업을 포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문제는 이 같은 일을 억제시켜야 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공기업과 유착하면서 제 몫을 하지 못한다는 것. 공기업은 ‘퇴직 공무원의 요양소’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행정자치부가 실시한 지방 공기업의 운영 실태 조사에서 부산도시개발공사 등 대다수의 지방공사 임직원의 최고 80%가 공무원 출신으로 나타났다.

공익을 위해 필요한 사업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진 ‘공(公)기업’이 수익을 내도록 만들고 있는 시스템도 문제다. 재정 지원 한푼 하지 않는 정부를 대신해 대형사업을 벌이는 공사로선 이윤 추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

무분별한 아파트 건설로 난개발의 상징이 돼 버린 경기 용인 서북부 일대. 이곳에 더 이상 아파트를 지어서는 안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토공과 주택공사는 지난해 보정, 동천2, 영신, 서천 등 4곳을 택지지구로 지정해줄 것을 건설교통부에 요청했다.

두 공사측은 “그대로 두면 민간업체들이 또다시 난개발을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용인시가 이들 지역을 포함한 도시 기본계획을 수립, 건교부에 승인 신청을 낸 상태여서 이 같은 설명은 군색하기 이를 데 없다.

환경정의시민연대 서왕진(徐旺鎭)사무처장은 “논란중인 경인운하 사업도 건교부와 공사의 자가발전 논리 때문에 단순 치수사업에서 대형 사업으로 변모했다”며 “건교부 공사 건설업체가 ‘토목 마피아’를 형성해 개발 부흥을 이끄는 풍조는 종식돼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 공기업은…▼

선진국 공기업은 말 그대로 철저하게 공익을 대변하는 비영리 기관이다. 이 같은 평가는 공익성을 지향할 수 있는 운영 시스템과 법제도 등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하다.

선진국에서는 공사의 운영자금을 대부분 국가기금이나 무이자에 가까운 장기저리의 공적자금으로 충당함으로써 이윤 창출의 부담에서 벗어나 있다.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일본의 도시기반정비공단(옛 주택도시정비공단)은 98년 일본 정부로부터 3000억엔(약 3조원)의 출연금을 받아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보유토지를 매입, 유동성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줬다. 98년 비슷한 사업을 벌였던 토공은 매입 자금 전액을 공사 명의의 채권을 발행해 확보해야 했다.

프랑스의 경우 신도시 개발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일체의 이윤을 남기지 못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상설 조직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선발, 사업단위별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 프랑스에서는 ‘라데팡스’나 ‘마르나발레’ 등과 같은 신도시를 만들면서 사업단 성격의 공사를 새로 만든다. 이 공사는 신도시 건설이 끝나면 해체된다.

충북대 황희연(黃熙淵·도시공학)교수는 “영국 등은 지방자치단체가 개발사업을 위해 공사 설립을 남발하지 않고 중앙 공기업에 위탁 추진하는 사례가 많다”며 “우리도 이 같은 시스템 도입을 고려해볼 때”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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