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루그먼 칼럼]그린스펀 비논리 ‘지적인 꼼수’였나

  • 입력 2001년 1월 29일 18시 31분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평소 발언이 난해하기로 유명하지만 그가 말해야 하는 내용들은 대체로 명료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주 상원 예산위원회에서 있었던 그의 증언은 애매한 데다 일관성도 없었다. 그린스펀의장은 이제 새 행정부의 정책을 겉으로는 부인하면서도 안도감을 주려고 했다는 인상을 피하기 힘들어졌다.

사실 그린스펀의장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행정부의 감세안을 거부했다. 또 올 1·4분기 경제성장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감세효과가 나타나기 전에 경기가 회복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뉴스의 헤드라인은 대부분 ‘그린스펀의 감세안 지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감세안 지지’에 이르기까지 사용했던 ‘꿰맞춘 듯한 논리’를 들여다보면 보도 내용이 그의 속뜻과 일치하는지 의문스럽다.

그는 “앞으로 10년간 재정 흑자가 예상되므로 연방정부는 국채 탕감은 물론 민간 부문의 자산을 사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투자 결정은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난항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나는 먼저 ‘재정 흑자 예측’에 대해 시비를 걸고 싶다. 그는 “재정 흑자 규모를 정부 지출보다는 감세를 통해 낮추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이는 권한을 넘어선 발언이다. 언제부터 ‘미사일방어체제 등에 돈을 쓰기보다는 감세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연준의 업무가 되었는가(물론 미사일방어체제가 재정 흑자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또 그는 연방정부의 투자 목적이 사회보장이나 의료보험 등에 투입된 자산을 늘리는 데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듯이 보였다. 이런 신탁 재산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고 그 흑자분을 다른 곳에 쓴다는 방안은 부적절하다. 전제조건은 있었다. “사회보장기금의 흑자분이 장기적으로 필요한만큼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글쎄. 연방정부를 정식 투자자로 인정하지 않고 이게 가능한 일일까.

정말로 이 점이 그린스펀의장의 근심이었다면 투자자로서의 정부 위치가 남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 그러나 그린스펀의장은 감세안을 정답으로 굳히는 것 같았다. 그는 모호한 말을 이어나갔다. “그동안 경기 침체에서 회복기까지 세금 감면이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입증됐으나 현재의 경기 약세가 예상외로 확산되면 적절한 감세 조치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똑같은 논리에서, 감세 조치가 효과를 발휘하기 전에 경기가 회복된다면 세금 감면이 오히려 큰 해가 되지는 않을까. 만약 이것이 어떤 똑똑한 사람이 대통령이 듣고 싶어하는 바를 말하기 위해 사용한 ‘지적인 꼼수’였다면 진의를 파악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정리〓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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