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집중진단/대중가요 노랫말]사랑 아니면 「삐딱」

  • 입력 1999년 5월 24일 18시 51분


노랫말은 대중 문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대중음악은 노랫말을 통해 시대상과 젊은이들의 바람을 담아낸다.

최근 근친상간을 다룬 노래 ‘추락’을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문제삼고 공연예술진흥위원회가 18세 미만 판금조치를 내림으로써 노랫말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대중음악 노랫말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다수는 ‘사랑밖에 난 몰라’만 노래하고 소수는 섹스와 폭력 등 일탈적 내용이나 욕설을 담는다. 노랫말, 무엇이 문제인가.

■사랑 노래 ■

‘사랑밖에 난 몰라’류는 대부분 인기가수들 차지다. 요즘 인기 절정인 그룹 ‘핑클’의 ‘영원한 사랑’, 유승준의 ‘열정’, 김현정의 ‘되돌아온 이별’은 모두 풋내기들의 사랑타령이다.

‘이제 내 사랑이 되어줘 내 모든 걸 너에게 기대고 싶어’(영원한 사랑)

‘내 머리는 항상 너를 그려 내 가슴은 항상 너를 불러’(열정)

‘나 상처받는 일 너를 만나서 나는 모든 걸 다 잃었어’(되돌아온 이별)

자유와 저항을 기본 정신으로 삼는다는 록에서도 마찬가지다. 김경호(비정)와 십대 취향의 사랑노랫말을 전문 작사가도 있지만 매니저와 가수의 공동작품인 경우도 많다. 이승철(오직 너뿐인 나를)도 애상조의 사랑만 외치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대중음악계의 외곬 ‘사랑타령’은 역사가 오래다. 그러나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한 고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세련된 노랫말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중음악평론가 성기완은 “사랑은 유사이래 서정시인들이 노래해온 지고의 가치이지만 오늘날 주류 대중음악의 가사는 사랑이라는 말을 상업화하는 경향이 짙다”고 말한다. “탈정치시대라지만 가사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상징과 은유, 묘사가 뛰어난 노래를 좀처럼 보기 힘들다”고 가요평론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10대를 겨냥한 댄스음악의 경우는 노랫말이 거의 실종상태다. 가사가 음향의 하나로 전락해버렸다. 노래가 1분에 1백20박자를 넘는 ‘광속’으로 달리다보면 적절한 단어의 배치가 어렵기 때문. 팬들도 리듬으로 노래를 듣고 가사는 그 다음 문제다.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노래의 가사가 좋다고 말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김혜진 J여중)

■비사랑 노래 ■

소수파의 노랫말은 섹스와 폭력 약물중독 등 일탈행위에 집착한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는 언더 계열의 록이나 힙합 노래는 정제되지 못했고 냉소가 짙다. 최근 공연예술진흥협의회로부터 청소년유해매체물로 판정받은 김진표의 ‘추락’의 일부분.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는 손놀림 아버님 내 몸을 누르는 그의 힘 엄청난 나의 짐…왜 하필 저였죠?아버지!아버지!아버지!…’

아버지가 딸을 범하고 그 딸이 아이를 버리고 타락한 끝에 아버지를 원망한다. 근친상간을 담은 이 노래는 결국 ‘18세미만 판매금지’딱지가 붙었다. 조PD의 ‘브레이크 프리’도 이에 앞서 기성세대에 대한 욕설때문에 청소년유해판정을 받았다.

랩 가사는 의미없는 단어의 나열에 그치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가사내용을 보지 않으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시인 유하는 “3분이라는 짧은 시간내에 랩을 통해 많은 의미를 담는다는 게 우리말에서는 어려울 것”이라며 “특히 요즘 랩가사들은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변종이 많다”고 말한다.

언더 계열의 록 그룹들은 금기에 도전하는 메시지지만 일탈 예찬에 그칠 뿐 거칠기 짝이 없다.

‘정의의 무법자가 되고 싶어? 뭔가 알 수 없는 숨겨진 썩어 문드러진 보스를 하나 둘 셋 넷 처치하고 싶어’(크라잉너트의 ‘황야의 무법자’)

‘우리는 홈리스 먹다버린 ×나게 많은 욕과 드럽다 ××…싹다그리 죽여버려’(자니 로얄의 ‘홈리스’)

이들 그룹들은 라이브 클럽이나 소극장 공연에서 자기들만의 주장을 공유한다. 그러나 그들의 공연문화 또한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허 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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