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 칼럼]상처뿐인 세 얼굴

  • 입력 1997년 11월 14일 20시 14분


선거판이 너무 살벌하다. 숨이 막힌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에서, 그것도 21세기를 준비할 대통령을 뽑는다는 선거가 축제는 못될망정 이렇게 험악해서야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자기가 이기려면 무조건 상대부터 때려눕혀야 한다는 생각이 아무리 앞서기로 이처럼 무차별 살육전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서로 다 죽이고나면 누가 남겠는가. ▼ 인격 모독 추잡한 싸움 ▼ 투표일 한달을 앞두고 대선구도는 일단 이회창(李會昌) 김대중(金大中) 이인제(李仁濟) 3파전으로 정리됐다. 세 후보의 얼굴은 이제 자연인의 얼굴일 뿐 아니라 각각 소속 정당과 그 지지자들을 대표하는 얼굴이기도 하다. 앞으로 돌출변수가 없는 한 유권자들은 이들 3인중 한사람을 골라 대통령으로 뽑을 것이다. 그럴 때 그는 또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 된다. 그런데 이 세 얼굴은 지금 모두 상처투성이다. 옛날에 맹자(孟子) 어머니는 아들 교육을 위해 세번이나 이사를 했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 이 나라에 산다면 달리 이사갈 데도 없다. 어디를 둘러봐도 비교육적 풍경뿐이다. 「병역면제당」 「노인야합당」 「민주반란 황태자당」… 이런 독설들이 말해주듯 어느 진영이고 일단 상대방을 헐뜯어놓고 보자는 식이다. 자기가 하면 결단이고 남이 하면 음모고 야합이다. 자기편은 무조건 정의파고 상대편은 무조건 타도해야 할 악(惡)의 집단처럼 몰아치는 이런 단세포적 이분법(二分法)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 한심하다. 물론 후보검증은 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 있다. 근거없이 상대방을 음해하거나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추잡한 싸움은 안해야 한다. 그런데도 비열한 말만 골라가며 서로 상대후보 얼굴 할퀴느라 제정신이 아니다. 대통령 자격은 고사하고 인격이나 도덕면에서도 천하에 몹쓸 사람쯤으로 서로를 몰아가고 있으니 예삿일이 아니다. 그러니 무얼 보고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국민들이 절망감에 빠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역겹고 지겨운 나머지 빨리 선거가 끝났으면 하고 넌더리내는 사람들이 많다. 하기야 정당정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명망가 중심으로 움직이는 게 우리 정치이고 보면 이번에도 정책대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때문에 인물대결은 어쩔 수 없다해도 자기편 후보의 상품성을 돋보이게 하여 경쟁적 우위에 서기보다 상대방 흠집내기로 반사이득을 얻으려는 작태는 치사하다. 다투어 오물 끼얹기로 인격비하 경쟁을 벌이면 상대방 인격만 상처나는 게 아니다.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결국 자기의 인격살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등돌리는 민심 생각을 ▼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들이 아닌 이상 이러지들 말아야 한다.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면 한이 없고 서로를 헐뜯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아직도 늦지 않다. 한번쯤 멈춰서서 정치에 등돌리는 민심을 되돌아보고 가급적 좋은 선거분위기를 만들도록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 무한경쟁의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국민적 에너지 결집은커녕 소모적 상처내기로 국력만 소진시킨대서야 말이 되는가. 선거때마다 이렇게 정치불신과 냉소주의를 키운다면 민주주의 제도 그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질까 두렵다. 세 후보들이 한번 만나 무릎을 맞대고 신사협정을 맺는것도 한방법이다. 그게 어렵다면 선거대책위원장들이 날짜를 잡아 서약식을 갖고 지금부터는 오로 지페어플레이만 하기로 국민앞에 서약할 수도 있는 문제다. 더이상 제로섬 게임으로 후보와 국민이 모두 패배자가 되는 길로 계속 가서는 안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처뿐인 얼굴로 청와대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남중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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