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이정빈/가까워진 모스크바

  • 입력 1997년 8월 9일 20시 37분


모스크바를 다녀간 국내 저명인사 한 분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막상 비행기를 타고 와보니 모스크바가 7,8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호놀룰루보다 가까운데 서울에 있을 때는 파리나 런던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 자신감 넘치는 경제 ▼ 한세기 동안의 단절로 서로 오가지 못한데다 냉전의 와중에서 양국간에 불행한 사건들이 일어났던 점에 비춰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스크바를 먼 곳으로 느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지난 70여년 동안 굳어진 이 나라의 사회체제 사고방식 생활양식이 몇년 사이에 완전히 바뀌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모스크바는 70개가 넘는 연극전용극장과 15개의 음악당, 64개나 되는 박물관을 가진 세계적 문화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개인편의 위주로 만들어진 서구도시들과 달리 방문객들에게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를 「미래의 나라」로 판단, 러시아의 미래에 동참하려 애쓰는 것을 보면 우리만 아직도 이 나라를 먼 곳으로 느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우리가 러시아를 바로 볼 때가 됐다. 러시아는 더 이상 지난날의 소련이 아니다. 지난해 선거과정에서 옐친대통령이 젊은이들과 어울려 디스코를 추던 모습에서 우리는 이 나라의 새로운 정치문화를 본다. 지난 3월 새로 구성된 이 나라의 내각에는 30, 40대의 개혁파 인사들이 대거 등장해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개혁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다. 젊은 러시아의 새로운 얼굴이다. 모스크바는 몇년 전에 비해 몰라보게 밝아졌다. 거리에 늘어선 화려한 광고판들은 밤이 되면 네온사인으로 휘황하게 빛난다. 거리가 밝아지면서 사람들의 의식도 변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중심 트베르스카야 거리에서는 부티크마다 가득찬 최신의상과 장신구들이 모스크바 시민들의 새로운 취향과 변하고 있는 러시아 경제사정을 보여준다. 청바지 하나를 구하기 어렵고 햄버거 하나를 사려고 긴 줄을 서야했던 시절은 지났다. 격변하는 러시아가 21세기에 어떤 모습을 드러낼지 아직은 아무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개혁이 반전될 이유가 없다고 보면 다음 세기초 러시아경제는 급속한 성장기에 접어들 것이며 정치 경제 군사 등 여러 면에서 구소련이 차지했던 자리의 많은 부분을 되찾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석유 석탄 가스 등 방대한 에너지자원은 21세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발전을 위해 불가결한 요소가 될 것이다. ▼ 통일대비 관계 다져야 ▼ 우리가 이러한 러시아와 동반자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는 여건은 충분하다. 러시아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기반을 우리와 같이 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첨단과학은 우리의 제조업과 보완을 이룰 수 있다. 또한 양국간에 영토적 대립이나 안보적 이해 상충이 없다는 점도 앞으로의 협력에 좋은 기반이 된다. 지난 7년간 한―러관계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무역고가 연간 40억달러로 늘어났으며 서울∼모스크바간 주4회 직항편과 부산∼블라디보스토크 정기선을 통해 연간 10만명 이상의 방문객이 오간다.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 멘델레예프를 찾아 3천명이 넘는 우리 유학생들이 이곳에 와있다. 한반도와 경계를 맞댄 러시아는 지금은 물론 통일이후에도 좋은 관계를 다져가야 할 중요한 이웃이다. 가까운 러시아가 우리에게 멀게 느껴지지 않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이정빈(주러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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