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초조한 일본」의 민족주의 바람

  • 입력 1997년 6월 14일 19시 58분


일본의 어느 큰 출판사가 발행하는 두꺼운 잡지의 특집에 최근 「한국점령에 무력(無力)한 일본」이라는 제목이 등장했다. 독도(일본명 다케시마)를 둘러싼 한일간의 마찰을 독자들에게 도발적으로 어필하려는 의도가 뻔히 들여다 보이는 기사다. 종래 이 출판사의 잡지에서는 민족주의(내셔널리즘)를 직접 자극할만한 내용의 기사는 독자들이 경원(敬遠)했는지 거의 눈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언론을 보면 민족주의에 불을 붙이는 듯한 선정적인 내용이 드물지 않다. ▼ 『아시아 諸國에 밀릴라』 ▼ 일부 「우익」의 전매특허처럼 생각돼 왔던 민족주의가 전후(戰後)50년을 지나면서 퍽 확산돼 가는 것 같다. 그 상징적 사건은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회(會)」의 발족이다. 이른바 「종군위안부」에 대한 국가의 강제성을 부정, 「위안부」를 다룬 교과서를 반일적(反日的)이라 해서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이 모임의 주장은 일본국민의 꽤 많은 층(層)에 침투하고 있다. 교과서의 기술이 전혀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위안부」를 거론하는 것을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고 매도, 과거 일본의 「국가」로서의 영광을 어린이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노골적 배타적인 언설(言說)에는 어느 의미에서 전후 50년을 지낸 일본의 초조감 같은 것이 그대로 반영돼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전후일본에서는 민족주의가 쇠퇴했는데도 주변 아시아제국(諸國)에서 민족주의가 강력히 대두했으므로 이대로 두면 일본이 아시아제국에 지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표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이 모임은 일본 「국사(國史)」의 부활을 주장한다. 과거의 꺼림칙한 국가주의적 팽창의 역사를 「국사」라는 이름으로 꾸며 새로운 세대가 국가에 대해 프라이드를 갖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억의 날조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같은 「국사」의 부활이 젊은 세대에도 꽤 침투하고 있는 것은 종래와는 다른 세론 때문으로 볼 수있다. 그 배경에는 냉전의 종결과 일본의 번영을 도왔던 국제적 조건의 소멸, 사회시스템 전체의 제도 피로(疲勞)같은 불투명한 폐색감(閉塞感)이 감도는 일본의 현실,그리고 이와 대조적인 아시아의 눈부신 성장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 유사시에 관한 논의와 중국위협론이 부상(浮上), 이와 관련해 일어나고 있는 영토분쟁에 갑자기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국사」가 역사와 함께 「국토」와도 결부돼 있는 이상, 역사를 둘러싼 마찰은 다른 한편으로 「국토」의 범위를 둘러싼 분쟁과 결부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국이나 한국과의 영토분쟁이 일본의 민족주의를 자극할만한 바탕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 과거 감추고 「國史」 부활 ▼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제국에서 본다면, 전후 일본에서 유력각료나 정치가들의 「망언」이 계속돼온 터에 「국사」를 부활하고 영토문제에 불을 붙이다니 웬일이냐는 반감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 여론은 불을 먼저 붙인 것은 주변의 아시아제국이며 일본은 지금까지 줄곧 참아왔지만 이제는 참을 수 없다는 식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미래지향」을 구호처럼 외쳐온 한일관계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은가.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단 한가지 있어서는 안될 것은 일본의 「국사」와 한국의 「국사」가 정면충돌, 국가라는 필터를 통해 양국민들의 교류역사는 걸러내지고 국가에 관련되는 민족주의만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경우다. 「국사」와 「국사」의 충돌에서 최대의 희생자는 어쩌면 재일한국인들일 것이다. 이같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은 크다.그 역할에 기대하고 싶은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강상중 (日 동경대교수·사회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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