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실패는 보약이다

  • 입력 1997년 6월 13일 20시 29분


나는 평소 임직원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일을 저질러 보기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기업경영에 있어 실패경험 만큼 귀중한 자산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패는 어느 사람에게만 특별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누구나가 인생에서 혹은 사업에서 한두번씩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게 마련이다. 위대한 과학적 발명과 발견도 쓰라린 실패의 경험속에서 그 열매가 맺힌다. 신약이나 신물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평균 1만2천번의 실패를 거쳐야 하고, 석유탐사에서도 최소한 25번은 실패해야 비로소 하나의 유정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이와같이 실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인데도 실패 자체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오그라진 사람이 많다.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시인하고 실패를 자인하는 용기있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다. 나는 기업경영에서 작은 성공의 누적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작은 성공으로 자만심에 빠져 더 큰 실패를 가져오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운전면허를 한번에 쉽게 딴 사람의 교통사고 발생률이 어렵게 딴 사람보다 세배 정도 높다고 한다. 작은 성공에 만족하는 평범한 「사람」보다는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도전적 「인물」이 앞으로 조직과 회사를 살찌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실패의 원인을 꼼꼼히 살펴보면 대개는 피할 수 있는 실패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실패가 될성부른 일은 시작하는 단계부터 그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사전준비 부족, 안이한 생각, 경솔한 행동이 실패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실패는 그대로 방치해 두면 독약이 되지만 철저히 원인을 분석하고 교훈을 찾아내면 오히려 최고의 보약이 된다. 세간에는 삼성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고 하지만 나는 임직원들에게 다리가 없더라도 건너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험을 각오하고 선두에서 달려가야 기회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유있는 실패는 나무라지 않지만 터무니없는 실패,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하고 있다. 이유있는 실패까지 나무라면 조직내 창의성이 말살되고 복지부동의 자기 보신주의만 남는다.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라 동일한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아직 실패를 교훈으로 삼고 자산화하는 데 매우 인색한 것 같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가 주는 교훈을 벌써 망각하고 있다. 역사에 나타난 똑같은 실패를 거듭하는 작금의 현실도 따지고 보면 실패를 자산화하지 못하고 실패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패를 결코 두려워 할 필요는 없지만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 오늘의 실패를 미래의 자산으로 만들어 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과거의 실패사례에서 배우지 못하고 역사속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회는 진보나 발전이 없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