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주인의식

  • 입력 1997년 5월 21일 20시 08분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일을 시켜도 가정부가 한 일은 집의 안주인인 주부가 하는 일과는 질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주부에게는 「이 일은 내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주인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슨 일을 하더라도 주인의식을 갖고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의 이념경쟁을 종식시킬 수 있었던 것도 개인의 사유재산권, 즉 「내 것」을 인정했던 것이 결정적인 힘이 됐다. 구 소련에서는 소출의 개인적 처분이 가능한 개인 텃밭의 생산성이 집단농장의 생산성보다 무려 2.7배나 높았다는 조사결과도 나와 있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체제를 움직이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주인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 내탓보다 남의 탓 ▼ 우리 민족은 일을 할 때 제 스스로 흥에 젖고 신명이 날 때는 놀라운 저력을 발휘하지만 자기 배짱에 맞지 않으면 평양감사도 마다하는 우직한 일면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명과 일의 재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실력을 인정해 주고 실리도 주어야 한다. 민주사회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고도의 주인의식을 발휘해야 제대로 돌아간다. 우리는 그동안 선진국에 비해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고 그나마 대부분을 타율적 군사문화에 시달렸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주인의식을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 결과 모든 문제를 내 탓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사회풍토가 자리잡게 되었다. 스탠드에 편안히 앉아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며 뛰는 선수를 탓하는 관중의 역할에 안주하게 되었다. 자기 생색만 내면서 남의 공을 가로채고 실패의 책임을 다른 데로 전가하는 이기주의적 풍토에서는 「주인의식」이 생겨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도 정부 기업 국민 등 책임있는 경제주체들이 주인의식의 부재(不在)가 주는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한 데 있다. 국가 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대형 금융사고도 따지고 보면 은행을 주인없이 방만하게 경영한 데 그 원인의 일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당면한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국민이 자기의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건전한 주인의식을 발휘해야 한다. 지금은 궂은 일이라도 몸을 사리지 않고 내가 먼저 앞장서겠다는 자기 희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대대적인 「주인 찾기」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자신감을 되찾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신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공장의 기계마다 「김철수 기계」라는 등 주인명찰이 붙을 때 한번이라도 더 기름칠하고 닦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자기 일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공사 실명제, 규제 실명제 같은 것도 적극 도입해 봄직도 하다. ▼ 신바람을 일의키자 ▼ 정부는 기업과 국민이 신바람이 나서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하고 기업은 우리 경제의 주인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혁신하여 경제회복에 앞장서 나가야 한다. 가정에서도 어린 자녀들로 하여금 스스로 일을 계획하고 결과에 대해 당당히 책임지는 습관을 들임으로써 어릴 때부터 주인의식에 눈을 뜨도록 해야 한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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