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짠∼한 사랑, 찡∼한 웃음…새 영화 ‘아는 여자’

  • 입력 2004년 6월 22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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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는 여자’는 기존 로맨틱 코미디의 익숙한 문법을 훌쩍 뛰어넘어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전해준다. 사진제공 젊은기획
영화 ‘아는 여자’는 기존 로맨틱 코미디의 익숙한 문법을 훌쩍 뛰어넘어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전해준다. 사진제공 젊은기획
25일 개봉하는 장진 감독의 네 번째 영화 ‘아는 여자’는 장 감독만이 붙일 수 있는 제목이긴 하지만, 그간 그의 영화들(‘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중 가장 무료한 제목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장 감독의 변화 조짐을 상징하는 중요한 변곡점이기도 하다.

장 감독이 변했다. 재주를 스스로 주체하지 못해 이리저리 엇나갔던 그의 영화는 이제 (그가 좋아하는 야구 용어로 말하자면) 홈런을 노리기보다는 방망이를 짧게 잡고 안타를 정교하게 쳐내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잘 나가던 투수 동치성(정재영)은 지금은 별 볼일 없는 프로야구 외야수다. 그는 애인에게 갑작스레 차이고 3개월 시한부 목숨이란 판정까지 받는다. 괴로워하던 그에게 늘 보던 바텐더 한이연(이나영)이 다가온다. 그냥 ‘아는 여자’였던 이연은 알고 보니 자기 집에서 서른아홉 발자국 떨어진 이웃집에서 함께 성장해 온 ‘오래된 여자’였던 것이다.

‘아는 여자’란 제목에서 간파할 수 있듯,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숫하게 발견되는 익숙하고 상투적인 문법들을 하나하나 끌어온 뒤 그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다. 이 영화가 아름답고 웃기면서도 일정한 무게감을 갖는 이유는 찡한 감동과 기발한 웃음을 징검다리처럼 배열하는 장 감독의 동물적 박자 감각 때문이다. 장 감독은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뽑아내는 로맨틱 코미디의 작법을 벗어나, 일단 코끝을 찡하게 한 후 “아니, 그게 아니고요”식의 생뚱맞은 대사와 상황을 불쑥 돌출시켜 후폭풍을 만든다.

치성을 ‘봉투에 쏙 넣어 들고 가는’ 이연의 모습을 담은 영화 속의 장면에서 보듯, 상상의 세계는 ‘자, 이제부터입니다’하고 예의바르게 들어오는 대신, 난데없이 이야기를 찢고 들어왔다가 천연덕스럽게 사라진다. 장 감독은 동화적인 낭만과 실험적인 상상력 사이에서 지능적으로 줄타기하면서 대사나 화면에 탄력 있는 여백을 남기는 허허실실 연출법을 보여준다. “나 처음인 게 많아요. 그래서 잘 모르는 게 많아요”라며 치성에게 입술을 죽 내미는 이연의 모습에서처럼 대사는 시적(詩的)이고 현실적인 동시에 뜬금없다.

이나영은 이제 ‘별 볼 일 없는 남자를 사랑하는 예쁜 여자’를 그려내는 데는 카메론 디아즈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또 정재영은 욕구불만에 가위눌린 소시민적 얼굴을 연극적 과장 없이 담아냈다. 치성이 평소 ‘아는 여자’인 이연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 것처럼, 관객들도 알고 보니 ‘아는 남자’였던 정재영에게서 (당황스럽긴 하지만) 로맨틱한 요소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그에게도 느끼한 쌍꺼풀이 있었다는 사실 같은….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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