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하이라이트]‘故정다빈 접신’ 선정성 논란

  • 입력 2009년 3월 12일 02시 59분


케이블채널, 무속인 주장 여과없이 방송

죽음은 아프다.

자살은 더욱 그렇다. 많은 이가 동경했던 연예인이 목숨을 버리면 그 아픔은 더 넓게 퍼진다.

대중매체에서 이런 사안을 다룰 때는 거르고 고민하고 신중해야 한다. 최근 유명을 달리한 장자연 씨에 대한 보도도 마찬가지다. 루머가 많은 연예계에서 이미 이런 말 저런 말이 들려오지만….

이런 상황에서 10일 오후 케이블채널 tvN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연예정보 프로그램 ‘tvN E뉴스’가 다룬 ‘고 정다빈 추모 2주년에 만난 어머니의 눈물’이 그랬다.

내용은 이렇다. 2007년 2월 10일 돌연 자살한 탤런트 정다빈의 생일(4일)을 전후해 묘소를 찾은 동료와 팬들, 그리고 고인의 어머니를 만나 심경을 들었다. 여기까지였다면 한 연예인의 죽음이 남긴 상처를 되새겨본 방송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은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만나길 원했다”며 ‘tvN 엑소시스트 자문위원’이라는 무속인을 찾아간다. 죽은 영혼을 불러낸다는 접신(接神) 의식. 고인이 몸에 들어왔다는 무속인은 별의별 말을 쏟아낸다. “너무 힘들어. 난 다 분해.” “난 독이 오를 대로 올랐어.” “내가 죽으려고 그래서 죽은 게 아니야.”

내레이션을 맡은 성우는 “정다빈은 서러운 눈물을 토해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제작진은 여러 차례 ‘역술인의 개인적 견해이므로 제작진의 의도와는 무관하다’는 자막을 내보냈다. 방송 다음 날, 담당 PD에게 제작진의 의도를 물었다.

“딸을 그리는 어머니의 아픔에 포커스를 맞췄다. 접신이나 빙의가 진실인가보다 애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사고 당일에 대한 언급도 있었지만 최대한 줄였다. 종교적인 판단보다 한국적인 특수성을 감안해 달라. (장자연 사건은) 전혀 고려치 않았다. 그전에 촬영된 내용이다.”

빙의나 접신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긴 어렵지만 졸지에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여과 없이 내보낸 방송은 소통 기구로서의 책임을 도외시한 게 아닌지. 논란이 예상되는 화면을 굳이 내보내는 이유가 궁금하다.

특히 연예정보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이 많이 본다. 죽은 이가 “좋은 곳에 못 가고 떠돌고 있다”는 말이 청소년들에게 미칠 영향을 얼마나 고려했는지 제작진에게 묻고 싶다. 연예 뉴스라 하더라도 방송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 선을 ‘깜빡’하는 순간, 방송은 설 자리를 잃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