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빨리 먹어 배나온 동국이, 중성지방 정상치의 1.8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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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건강 리디자인/아이건강, 평생건강]
서울 가인초등학교 3학년 서울아산병원서 비만체크

19일 오전 서울 도봉구 가인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보건실에서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에게 신체발달 검사를 받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9일 오전 서울 도봉구 가인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보건실에서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에게 신체발달 검사를 받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얼마 나왔어?”

“내 거(수치) 보지 마!”

19일 오전 서울 도봉구 창5동 가인초등학교 보건실에서는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몸무게와 허리둘레 수치를 몰래 보다가 벌어진 일이다. 아이들은 서로 “얼마 나왔느냐”며 친구들의 수치에 큰 관심을 보였다. 친구와 비교해 내가 더 통통하지는 않은지, 배가 더 나오진 않았는지, 작은 눈망울들이 바쁘게 움직인 하루였다.

○ 과체중 아이 92명 중 18명

이날 검사는 학교에서 1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신체발달 검사가 아니었다. 동아일보와 서울아산병원이 함께 기획한 ‘2015 건강 리디자인-아이 건강, 평생 건강’ 기획 가운데 비만 프로젝트의 하나.

최진호 서울아산병원 소아내분비대사과 교수가 검사와 진료를 총괄하는 가운데, 김서희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와 최신혜 어린이병원 간호사, 그리고 보조 인력 두 명이 아침 일찍 가인초등학교에 들어섰다. 이 학교 최순주 교장은 “‘아이 때 건강해야 성인 때도 건강하다는 취지에 공감해 건강리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며 “학생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며 일행을 격려했다.

오전 10시 시작된 검사는 3학년 전체 4학급 92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1∼6학년 중 3학년이 선정된 것은 이 시기부터 비만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14 학교건강검사 표본조사’ 결과를 보면 초등학생 비만율은 1, 2학년 때 각각 10.4%, 11.6%에서 3학년 때는 14.6%로 크게 높아졌다.

의료진과 이 학교 임명숙 보건교사는 키, 몸무게, 허리둘레 등을 측정해 비만 정도를 가려냈다. 성인의 경우 체질량지수(BMI·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로 비만을 따지지만, 초등학생은 경우 질병관리본부와 대한소아과학회에서 제시한 연령별 표준체중을 기준으로 비만도를 결정한다. 키, 몸무게를 잰 뒤 이 수치를 기준표와 비교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렸다.

검사 도중 아이들은 즐거운 표정이면서도 쑥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남학생 중 몇 명은 상의를 들어올려 허리둘레를 재는 과정에서 “엄마가 ‘배꼽을 보여 주면 안 된다’고 했다”며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다. 여학생 중 몇 명은 몸무게가 기록표에 적힐 때 “아∼이” 하면서 수치에 불만을 표시했다.

검사 결과 92명 중 비만에 해당하는 학생은 모두 18명, 전체의 19.5%였다. 학교건강검사 표본조사 결과에 나타난 전국 초등학교 3학년 비만율(14.6%)보다 조금 높은 수치였다. 의료진은 18명 중 고도비만에 해당하는 4명은 정밀 진단과 처방을 받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에 내원할 것을 권했다. 김서희 전공의는 초기 비만인 아이들에게 간단한 영양 상담을 진행했다.

○ 세 명의 아이들 병원 찾아

고도비만 학생 중 부모가 진단과 치료에 동의한 장근호, 이동국, 김선홍(이상 가명) 군이 25일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이들은 우선 조자향 소아내분비대사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았다. 조 전문의는 이들 부모에게 출생 때의 몸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 만삭으로 출산했는지, 자연분만인지, 가족 중에 비만과 고혈압 등은 없는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등을 상세하게 물었다. 이후 아이들 혈액검사를 통해 콜레스테롤, 간수치, 당뇨병 여부 등을 검사했다.

근호는 비만 때문에 키가 크지 않는 등 문제가 심각했다. 키 134cm에 몸무게가 51kg인 근호는 발달기준표에서 몸무게가 97%가 넘는 고도비만이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부터 살이 찌기 시작한 근호는 1학년 때는 키가 큰 편이었는데, 지금은 보통이다. 혈액검사 결과 근호의 총콜레스테롤이 dL당 200mg이 나왔다. 성인의 겨우 정상범위(150∼250)에 해당하는 수치지만 아이로 보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근호는 친할아버지가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141cm에 55kg인 동국이는 중성지방이 문제였다. 총콜레스테롤이 dL당 183mg으로 근호보다 낮았지만, 중성지방이 dL당 357mg이 나왔다. 중성지방의 정상 범위는 dL당 200mg 이내다. 중성지방은 식습관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보기에도 배가 유달리 많이 나온 동국이는 음식을 빨리 먹는 습관이 문제였다.

145cm에 50kg인 선홍이는 혈액검사에서 큰 문제가 없었지만 아버지가 비만이고 할아버지는 고혈압을 앓는 등 비만과 관련된 가족력이 문제로 보였다.

이들은 검사를 마친 뒤 영양 상담과 운동 처방을 받았다. 한 달 뒤에는 다시 병원을 찾아 개선 정도를 살펴볼 예정이다. 조자향 전문의는 “세 아이는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체질 개선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며 “무엇보다 부모가 어릴 때 비만이 각종 성인병을 불러오는 큰 원인으로 생각하는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주치의 한마디]“학생들 과식으로 공부 스트레스 풀어… 식사요법 효과적” ▼

최진호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소아내분비대사과 교수
최진호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소아내분비대사과 교수
최근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비만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생긴 비만은 성인기까지 지속돼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같은 성인병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아청소년 비만은 과도한 학업과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를 과식으로 해소하려고 탄수화물과 지방이 많은 음식을 섭취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또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이 있는데, 이는 유전적 요인이 비만의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다. 따라서 부모 형제 가운데 비만이 있는 경우 살이 쉽게 찔 위험성이 높다.

비만한 어린이들은 대부분 키는 평균 이상으로 커지고, 뼈 연령이 증가해 사춘기가 빨리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또 지방이 축적돼 배나 엉덩이가 나오고 남자 아이의 경우 가슴이 커져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몸매, 운동 능력에 대한 열등감을 갖기 쉬워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비만과 동반되는 고지혈증은 혈액 중 콜레스테롤 같은 지방이 혈관 벽에 붙어 동맥경화로도 진행된다. 그러면 심장 혈관이나 뇌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 고혈압이 발생한다. 지방이 간에 축적되면 지방간이 발생해 지방성 간염, 간경화로 진행하기도 한다.

비만인 어린이나 청소년은 성장기이기 때문에 어른처럼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무리하게 식사를 제한하면 성장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체중이 다시 증가하는 요요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체중을 줄일 필요는 없다. 또 성인처럼 약물이나 수술적 치료보다 식이요법과 운동을 통한 생활 패턴의 변화를 유도해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현재 체중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키의 성장에 따라 신체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이번에 고도비만으로 진단받은 장근호, 이동국, 김선홍(이상 가명) 군의 경우 밖에서 친구와 함께 뛰어노는 것만으로 충분한 운동이 될 수 있으며 눕는 습관을 줄이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가까운 거리는 걷는 습관을 기르는 등 몸을 자주 움직여야 한다.

어린이 비만 치료는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들이 식사요법과 운동에 동참하면서 정신적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최진호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소아내분비대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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