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26…낙원에서(4)

  • 입력 2003년 9월 26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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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온통 진흙탕…나무도 말뚝도 없어서, 안장을 내려 말을 묶어둘 수밖에 없었어. 모포 둘둘 말고 배낭에 기대기는 하지만, 다들 말할 기운조차 없어. 다른 때 같으면 삽으로 논에다 구멍을 파거나 짚더미에 누워 고향 얘기들 하는데 말이야. 대륙의 밤은 안 그래도 추운데, 비까지 내려봐, 추워서 부들부들 떠는데 웬 오줌은 그렇게 마려운지, 일어서기도 귀찮아서 옆으로 몸만 돌린 채로 고추를 끄집어내는데, 추위에 쪼그라들어서 나올 것도 안 나와. 꾹 눌러야 쫄쫄거리고 한심한 소리가 나지. 그리고 한 번 잠을 깨면, 모포가 축축하고 무거워서 다시는 잠도 안 와. 할 수 없으니까 비는 내리는데 눈만 껌벅껌벅거리지. 불침번이 들고 선 칼이 빗물에 젖어 번들거리고, 말은 히힝 히힝 낮게 울어대고, 으으으으, 으으으윽, 누군지 가위에 눌려 신음하고.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꾸벅꾸벅 잠이 들면, 고향 개울에서 수영을 하는 꿈을 꿔, 물은 차갑고, 꿈속이니까 따뜻해도 좋을 텐데, 추울 때는 왜 그런지 꼭 추운 꿈을 꾼단 말이야….

밥 먹을 때는 또 어떻고, 120명분의 식료품을 현지에서 조달해야 되니 그 고생이 말이 아니지. 출발할 때 건빵하고 통조림, 쌀 같은 거 배낭에 잔뜩 메고 가기는 하지만, 사흘도 못 가 다 떨어져. 어떤 자들은 집안에 들어가 쌀이나 된장, 냄비를 찾고, 또 어떤 자들은 닭, 돼지, 소를 쫓아다니고, 밭에서 채소와 무를 뽑는 자도 있고. 쌀은 별로 없었어. 중국 사람들은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니면 밥을 짓지 않으니까, 보통 때는 그냥 빵 쪄서 먹잖아. 널찍한 냄비 뚜껑 열어서 빵이 있으면 ‘빵이다! 빵’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워.

징발을 하려고 해도 창콜로들은 거의 다 도망치고 없으니까, 어떤 때는 먹을 만한 게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아. 그러면 다들 밭을 훑고 다니면서, 호박이다, 하고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가는데, 호박은 가마니에 가득한데, 새끼줄이라도 있어야 옮기지.

논에 떨어진 이삭 주워서, 그걸 돌이나 나무로 두드려 껍질 벗겨서 양말에 담아 오는 일도 있었어. 껍질을 제대로 못 벗겼으니 삼키기도 어렵잖아. 처음에는 이로 대충 깨물어서 뱉어내는데, 그러기도 귀찮고 피곤하니까 그냥 꿀꺽 삼키는 거야. 그래도 아침 점심도 못 먹고 행군한 날에는, 다들 불평 한마디 안 하고 꿀꺽꿀꺽 삼키지.”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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