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24…낙원에서(2)

  • 입력 2003년 9월 24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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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지?”

“마음대로 부르세요.”

“좋아 그럼, 미도리라고 부르지.”

“…누구 이름인가요?”

“고향에 두고 온 약혼녀.”

미도리, 미도리, 남자는 허리를 정신없이 움직이더니 금방 일을 끝냈다.

나미코는 이제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욱신욱신 통증은 심해지고, 쇠창살 사이로 비치는 저녁 해는 연기처럼 뿌옇게 사라지고, 그 다음에는 아픔만 남았다. 나무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하얀 휴지가 무궁화 꽃처럼 이부자리 주위에 널려 있었다.

다음으로 들어온 사람은 단골 가토 중사였다. 한 달에 같은 여자를 두 번 찾으면 헌병대에서 주의를 주는데, 가토 중사는 매주 한 번은 꼭 들르는 데다 새벽에는 몰래 찾아와 칫솔이며 비누가 들어 있는 위문품 주머니 또는 곰팡내 나는 꾸깃꾸깃한 5엔짜리 군표를 주곤 한다.

“나미코, 몸은 좀 어때?”

“열이 안 떨어져요…배도 아프고….”

가토 중사가 안쪽 나무문으로 나갔다. 땀이 식는다…내 땀이 아니라서 그런지 식는 것도 빠르다…나미코는 지난 대조봉대일에 매상고 1위로 표창받았을 때 받은 유탄포에 발바닥을 갖다댔다.

놋대야를 들고 돌아온 가토 중사는 찬 물수건을 만들어 나미코의 이마에 올려놓았다.

“담배 하나 줄래요.”

가토 중사는 가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개비 물고는 불을 붙여 나미코의 입술에 끼워 주었다. 나미코는 한껏 깊이 빨아들이고는 한참 있다 신음소리와 함께 연기를 내뿜었다.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혀도 이상하다. 향 연기를 빨아들인 것 같다. 시즈에 언니가 가위로 목을 찔러 자살했을 때 피웠던 향. 아니지, 안 되지, 지금은 죽은 시즈에 언니의 얼굴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싫다….

“나미코, 전쟁 끝나면 우리 같이 살자.”

바로 옆 의자에 앉아 있을 텐데, 검열 받은 신문처럼 얼굴 있는 데만 검다. 몸 전체는 그림자 같고. 이 사람, 오래 못 살지도 모르겠다.

“고향에 돌아가면, 일본 여자 얼마든지 있을 텐데…지금이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나미코는 일본 여자로 보여. 일본말도 아주 잘하고, 부모님한테도 반도에서 태어난 일본 사람이라고 소개했는걸.”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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