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230)

  • 입력 1999년 9월 27일 18시 44분


나는 이번에 발행할 팜플렛의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 될 오 월 이십 일 화요일 밤 자동차 부대의 등장에 대하여 타자를 찍어 나갔다.

무등 경기장 앞에 택시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그중에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기사들도 보였다. 오후 여섯 시까지 모인 택시는 이백여 대가 넘었다. 운전기사들은 차를 질서정연하게 모아 놓고 지금까지 시내 곳곳에서 목격했던 잔학상과 동료 기사들이 당한 부상과 죽음에 대하여 소식을 나누고 공수부대의 만행을 성토하면서 저지선의 돌파에 앞장서자고 결의했다. 그들은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각자 차에 올라타서 고속도로로 통하는 길을 따라 금남로를 향하여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렬이 금남로에 이르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저지선 앞에서 대치 중이던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곧 그들은 손에 손마다 쇠파이프 각목 화염병 곡괭이 식칼 낫 등속을 들고 돌멩이를 던지며 차량을 따라 엄호하며 돌격했다. 갑자기 돌변한 사태에 놀란 계엄군은 엄청난 양의 최루탄을 쏘아대고 페퍼포그 차로 전력을 다해 가스를 뿜어댔다. 마치 모든 시위 군중들을 질식사시켜 버리려는 듯 쏘아대는 강력한 가스탄이 앞으로 진격하는 차량들의 유리 창문을 부수며 차 안에 떨어졌다. 어지러움과 질식 상태를 견디지 못한 운전기사들은 계엄군과 겨우 이십여 미터를 남겨두고 멈추었다. 차를 멈춘 운전기사들은 방향 감각을 잃고서 연기 속에서 사방을 헤맸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고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하면서 비틀거렸다. 이 틈을 타고 계엄군이 앞으로 돌진하여 곤봉으로 기사들의 머리를 타격하면서 운전기사 한 사람에 서넛이 달려들어 패고 짓밟고 나서 연행해 갔다. 뒷줄의 기사들은 재빨리 운전석에서 뛰어내려 피신했지만 수십 명이 연행되어 갔다. 차량을 엄호하던 시민들도 길옆이나 부서진 차의 틈바구니에 숨어서 돌을 날렸다. 계엄군은 특공대답게 돌을 무릅쓰고 뛰쳐 나왔다. 밀려든 차량들은 앞에서 저지를 당하는 바람에 서로 부딪치며 대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수백대의 차량들은 거의 유리창들이 깨어져 버렸으며 계엄군 쪽에서는 앞등의 불빛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고 전방을 살필 수가 없었으므로 곤봉이나 총 개머리판으로 모든 차량의 앞등을 깨부수며 전진했고 시민들은 끈질기게 투석을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계엄군은 가까스로 시민들을 차량 시위 대열의 끝까지 밀어붙였다.

잠깐, 거기 끼워 넣을 자료가 여기 있는데요….

뒤에서 나의 작업을 지켜보던 김 선배가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일손을 멈추고 잠깐 기다렸다. 그가 신문 스크랩을 복사해 두었던 듯한 자료를 작업 원고 위로 내밀었다.

동아 오 월 이십이 일자 기삽니다. 검열에서 삭제된 부분이오.

나는 이 맞춤한 기사를 위의 목격담 아래에 연이어 찍어 나갔다.

잠시 후 자욱한 최루탄 속에 버스를 앞세운 시위대는 군인들과 육박전을 벌여 전일방송 부근의 금남로에는 비명과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이십여 분간 계속된 이 충돌이 끝나자 시동이 걸린 수십 대의 버스 트럭 택시 사이에는 머리가 깨어지거나 어깨가 내려앉아 피투성이가 된 채 실신한 부상자들이 곳곳에 즐비했다. 안내양 차림의 이십대 처녀 두 사람은 운전사 차림의 머리가 깨어진 삼십대 청년을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고, 쓰러진 환자를 이송하며 ‘환자가 위독하니 앰뷸런스를 빨리 보내라’는 목멘 소리가 유혈극의 참상을 말해 주었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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