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섬진강 포구 양조장과 정병욱 윤동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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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감시를 피해 윤동주의 육필시 원고를 보관했던 전남 광양시의 정병욱 가옥.
일제의 감시를 피해 윤동주의 육필시 원고를 보관했던 전남 광양시의 정병욱 가옥.
 1940년 봄, 연희전문학교 3학년 윤동주는 평생의 지기를 만났다. 전남 광양에서 올라온 다섯 살 연하 신입생 정병욱이었다. 이들은 연희전문 기숙사에서 처음 만났고 종로구 하숙집에서 같은 방을 쓰기도 했다.

 이들은 늘 함께했다. 정병욱의 회고에 따르면 둘은 가까운 인왕산을 산책하고 그 산골짜기 아무 데서나 세수를 하고, 전차를 타고 충무로에 나가 책방을 순례했으며, 돌아오는 길에 음악다방이나 영화관에 들렀다. 문학과 예술을 논하고 세상을 걱정했다. 윤동주는 자신의 습작시를 정병욱에게 먼저 보여주었다.

 윤동주는 우리말 시집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일제의 혹독한 탄압으로 우리말 출판이 불가능하던 시절이었다. 1941년 윤동주는 모두 19편의 시를 자필로 정리하고 여기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만든 원고 3부 가운데 하나를 정병욱에게 건넸다. 원고 맨 앞에 ‘정병욱 형 앞에… 윤동주 정(呈)’이라고 썼다. 이듬해 윤동주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정병욱은 학병으로 끌려가게 되자 윤동주의 원고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소중한 것이니 잘 간수해 달라”는 말씀과 함께 고향의 어머니에게 원고를 맡겼다.

 정병욱은 다행히 살아서 광복을 맞았다. 서울대에서 계속 공부를 했고 뒤늦게 윤동주의 소식을 들었다. 광복도 보지 못한 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불귀의 객이 된 윤동주. 정병욱은 고향 집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보자기로 정성스레 싸놓은 원고를 내놓았다. 윤동주의 원고는 이렇게 살아남았고 1948년 1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출간되었다.

 정병욱이 자란 고향 집은 광양시 진월면 자그마한 망덕포구에 있다. 바로 앞으로 섬진강이 쉼 없이 흘러와 바다와 만나고, 봄이 되면 매화가 지천으로 핀다. 정병욱 고향 집은 1925년 지어진 일본식 목조 건축물. 아버지가 양조장을 운영했기에 양조장과 주택을 겸한 구조로 되어 있다. 단정한 건물 분위기가 포구 풍경에 잘 어울린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이 양조장 건물 깊숙한 곳 커다란 독에 윤동주의 원고를 정성스레 숨겨놓았던 것이다.

 차갑고 암울하던 시절, 윤동주의 시는 매화처럼 겨울을 인내하며 이곳에서 봄을 기다렸다. 그건 정병욱(전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과 윤동주의 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가옥은 현재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원고 보관 장소도 그대로 보존해 놓았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
#윤동주#육필시#정병욱#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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