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김은홍]요리사의 자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흔히 사람들은 자격이 있는 자와 자격이 없는 자를 구분하곤 한다. 며칠 전 내가 그런 심판(?)을 받았다. 전국의 아이들이 참여한 여름캠프에 가서 사흘간 음식을 준비하게 되면서부터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한다는 건 보람된 일이다. 때 묻지 않은 아이들에게 내 음식을 인정받을 때엔 높은 분들이 가게에서 ‘엄지 척’을 하는 것보다 훨씬 값지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한참 준비할 때 생각지도 않던 곳에서 허를 찔렸다. 우리 가게가 특정 보험에 가입해 있는 등 자격이 있는지를 두고 누군가가 문제 삼았다. 담당자조차 이런 질문을 받고 난처해했다.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건강하고 깨끗하고 맛 좋은 음식을 해 주기 위해 준비했던 내가 자격이 없다니…. 화도 나고 원통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우리 사회가 자격증, 그 종이 한 장을 중시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자격은 대체 누가 쥐여 주는 것이며 어떻게 결정하는 것인가. 물론 그 자격(?)을 위해 공부하고 고뇌하며 준비하는 자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과 행동보다 더 중요한, 종이 한 장의 자격이라면. 그 사람의 됨됨이나 내공을 보기보다는 서류에 적혀 있는 한 줄의 이력이 더 중요하다면.

이 행사를 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이 됐다. 잘할 자신은 있었지만 하나라도 어긋나면 나를 믿고 추천해줬던 이들조차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담당자도 일을 그대로 진행하자고 했고 다행히 행사는 잘 마무리됐다.

아이들은 마지막 날 우리에게 음식이 맛있어서 대단히 고마웠다는 말을 했다. 주책없이 눈이 따끈해졌다. 사실 불볕더위에 밖에서 음식을 해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같이 갔던 팀원들이 잠자리 불편한 내색을 않고 묵묵히 했던 데에 대한 고마움도 컸다. 끝났다는 안도감도 한몫했다.

이번 일을 겪고 마음가짐과 자신감을 뛰어넘을 자격증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누구든 기로에 섰을 때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고자 한 일을 해낼 용기만 있다면야 40이든 50이든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해내길 원한다. 나 또한 40을 앞두고 서울에서 전주로 내려와 새로운 일을 감행했고, 전주에 와서도 새로운 일에 또 부딪힌다. 물론 말처럼 잘되지 않을 때가 있지만 최소한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해보는 데까지 해보는 게 도리라 생각하고 실행을 해본다.

소위 요새 친구들은 포기가 너무 빠르다. 이거 아니어도 할 게 많은데,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하겠지, 부모님이 알아서 해주실 거야…. 그러면서 어른임을 강조한다. 내가 아는 어른은 자신에게 닥친 일을 스스로 처리해내는 사람이다. 나 역시 앞으로도 지금처럼 숱한 도전에 부딪힐 것이다. 이곳 전주에서 나는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말만 내세우는 이가 되지 않으려 한다.

※ 필자(42)는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전북 전주로 내려가 남부시장에서 볶음요리 전문점인 더플라잉팬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김은홍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