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 연구]<4>스토리텔링 분석 박기수 교수

  • 입력 2008년 10월 27일 02시 58분


사진 제공 박기수 교수
사진 제공 박기수 교수
“에반게리온… 개그콘서트… 숨은 문화코드 찾아내죠”

박기수(42·사진)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서면 책장 위에 서 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인형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로봇 태권브이, 아톰, 스파이더맨…. 박 교수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를 아직 장난감이나 만지고 있는 ‘키덜트(Kidult)족’으로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인형들은 그의 소중한 ‘연구 재료’다.

박 교수는 스토리텔링을 연구하는 학자다. 그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서사 특성 연구’ ‘한국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전략 연구’ 등의 논문을 썼다.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PC게임 등 문화 전반을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분석해왔다.

그는 원래 문학평론에 심취해 있던 순수문학도였다. 한양대에서 받은 석사학위 논문 제목은 ‘김기림의 시론(詩論)’. 박사학위 주제를 찾던 그에게 1999년 새로운 화두가 찾아왔다.

“‘이제 대중문화 시대가 온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말고 10년 후 꼭 필요한 학문이 무엇인지 고민하라’는 지도교수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더군요.”

문학작품의 내러티브(서사구조) 분석에 관심 있던 그는 새로운 분석 대상을 찾다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알게 됐다.

꼬박 이틀간 26화를 모두 본 그는 ‘당분간 문학을 떠나겠다’고 결심했다. 박 교수는 “에반게리온이 어떤 문학작품보다 완벽한 내러티브를 갖췄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인공 각자의 미시적 서사와 전체 서사의 흐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

2001년 ‘애니메이션 서사의 특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관심의 폭을 내러티브에서 스토리텔링으로 넓혔다. 이야기 자체도 중요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이를 전달하고 향유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어 함께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에반게리온의 팬들은 영화에서 완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 외전(外傳) 형태로 발표합니다. 일방적 전달이 아닌 상호소통 방식의 창작이 이뤄지는 거죠.”

그는 이제 문학이든, 영화든 모든 장르에서 작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이야기 전달 방식과 작품에 대한 반응을 미리 염두에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트랜스포머’의 경우 ‘비주얼 스토리텔링’에 강조점을 두고 제작했기 때문에 이야기의 단순함을 극복하고 큰 인기를 끌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2004년 뜻을 같이하는 동료 교수들과 함께 한양대에 문화콘텐츠학과를 만들었다. ‘전략화된 내러티브를 만드는 방식’을 가르치는 게 이 학과의 주된 목표다. 드라마 ‘겨울연가’에 숨겨진 상업적 코드나 개그콘서트와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웃음 코드 비교 등을 주로 수업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순수문학을 하던 사람이 만화영화나 들여다보느냐는 핀잔을 많이 들었습니다. 문학을 하는 학자들이 순수문학, 순수비평만 고집하다 보니 다른 장르에 있거나 또는 순수문학 자체에 있는 부가가치가 간과됐습니다. 그런 분들이 관심의 폭을 조금만 넓히면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훨씬 탄탄해질 것으로 믿습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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