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21>알래스카…

  • 입력 2008년 7월 22일 03시 01분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글 사진 호시노 미치오/청어람미디어

《무엇인가를 찾아서 이 북쪽 끝까지 찾아온 다양한 사람들. 더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을 떠나서 들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자연을 개발하려고 하는 사람들, 지켜나가려고 하는 사람들. 다양한 문제를 안고서 빠르게 현대화돼 가는 에스키모 인디언…. 누구나 저마다 더 나은 생활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해 나가는지, 내 눈으로 지켜보고 싶다.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나와 무관하지 않다.》

피사체가 속삭이는 알래스카 18년

일본인 호시노 미치오 씨는 1973년 19세 때 미국 알래스카 시스마레프 마을에서 에스키모 일가와 함께 여름을 보냈다. 게이오기주쿠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1978년 다시 알래스카대 야생동물관리학부에 입학하게 만든 것은 10대 말 그 여름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 결정은 젊은 날의 치기가 아니었다. 호시노 씨는 오로라, 백야, 빙하 등 그곳의 대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18년을 오롯이 알래스카에서 살았다. 그의 사진은 일본 잡지뿐 아니라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해외 저명 잡지에도 게재됐다.

사진가로서 명성을 얻은 뒤에도 호시노 씨는 끝까지 알래스카를 떠나지 않았다. 1996년 8월. 러시아 캄차카 반도 쿠릴 호에서 TV 프로그램용 사진 취재를 하던 그는 불곰의 습격을 받아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책 말미에 해설을 쓴 소설가 오바 미나코 씨의 말대로 표피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자연) 사진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내가 그때 여기에 가서 무엇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사진, 피사체보다 사진가를 드러내기에 급급해하는 사진은 보기에 편안하지 않다.

호시노 씨의 카메라는 ‘자연의 놀라운 비경’을 좇지 않았다. 사진설명이 아닌, 얼핏 사진과 상관없게까지 느껴지는 덤덤한 일기. 덧붙여진 사진들은 그 글을 쓴 날 곁에서 함께 하루를 보낸 동물과 나무, 사람들의 평범한 표정이다.

여행작가 김남희 씨는 “단아하고 정갈한 글과 자연에 대한 깊은 외경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사진이 한 남자의 단단하고 맑은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며 이 책을 추천했다.

“자연이란 인간의 삶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포괄하는 것. 아름답고 잔혹하고, 그리고 작은 것에 의해 큰 상처를 받는 것. 자연은 강하면서 또 한편 연약하다.”

호시노 씨는 테너 색소폰 주자 덱스터 고든을 “하느님처럼” 사랑했다. 책을 죽 읽어 내려가는 느낌이 비 오는 날 오후 창가에 앉아 담백한 재즈 앨범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균형 있게 편성된 콰르텟의, 기교를 자제한, 소박하지만 묵직한 연주.

김남희 씨는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38도 폭염의 스페인으로 돌아온 날 단숨에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덧문을 내려 햇빛을 차단하고 소파에 기댄 채 만난” 이제 세상에 없는 이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책장을 덮고 난 뒤 알래스카는 내 로망이 됐다. 거기에 더해 ‘이런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그를 닮은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살 수 있다면…’ 하는 부질없는 열망까지 생겼다.”

저자의 말처럼 “알래스카(자연)는 늘 발견되고 늘 잊혀진다.”

하지만 잊었다가 다시 깨닫는 것들 덕분에 사람은 그럭저럭 살아간다. 따뜻하고 상냥한 남자가 평생토록 정성껏 써내려간 연애편지를 엿보는 기분.

자연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전염된다. 호시노 씨는 수많은 사람에게 큰 힘이 될 작은 나눔을 세상에 남기고 떠났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