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아이들, 무한한 상상력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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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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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파티, 남택수. 그림 제공 포털아트
반딧불 파티, 남택수. 그림 제공 포털아트
조지 바이런이 네 살 때 읽은 독서 교재의 첫 페이지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만들고, 사탄은 죄를 만들었다.’ 그것을 읽은 어린 바이런은 그 즉시 손뼉을 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래, 하나님은 죄의 할아버지야!”

어느 날, 길을 가던 공자에게 어린아이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하늘에는 별이 몇 개나 있습니까?” 아이의 당돌한 질문에 공자는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내 눈앞에 있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공자의 대답에 아이가 거침없이 되물었습니다. “그럼 선생님 눈썹에는 털이 몇 올이나 있습니까?”

어느 날, 고모가 세 살짜리 조카의 발가락을 깨물며 장난을 쳤습니다. “널 잡아먹을 테다, 어흥!” 그러자 조카가 지지 않을 기세로 응대했습니다. “그렇게는 안 될걸. 내가 먼저 잡아먹을 거야.” 고모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다시 응수했습니다. “내가 너보다 크니까 먼저 잡아먹을 수 있어.” 그러자 조카가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렇게 응대했습니다. “그렇게는 안 될걸. 내가 고모 입부터 먹어치울 거니까.”

앞서 제시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어린이의 상상력에는 길들여지지 않은 날카로움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의 패턴화된 세계, 길들여진 사고방식에 따끔한 일침을 가할 때가 많습니다. 예로부터 아이를 내세워 지혜를 일깨운 이야기는 많지만 21세기로 접어든 뒤에는 아예 아이가 어른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기발하고 초월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의 시험 답안지 중에서 그런 것을 선별해 교사들에게 활용교재로 배포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교사생활을 하는 분에게서 받아본 활용교재에는 이런 시험문제가 있었습니다. ‘남한 청년과 북한 처녀가 결혼을 하였습니다. 어떤 일들이 생길까요?’ 그 저학년용 주관식 문제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답을 적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뜨거운 밤이 시작된다.’

‘옆집 아주머니께서 사과를 가져다주셨습니다.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할까요?’라는 슬기로운 생활 문제에 ‘뭐 이런 걸 다…’라고 능청스러운 답을 적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불행한 일이 거듭 겹침’이란 뜻의 사자성어를 묻는 ‘설( )가( )’의 괄호 넣기 문제에 (사)와 (또)를 넣어 배꼽을 잡게 한 귀염둥이도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천진난만하면서도 때 묻지 않은 우주적 상상력이 너무 깜찍하고 기발해서 참으로 오랜만에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가르침과 보살핌 속에서 성장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는 어른의 행동을 모방하면서 자기 패턴과 성품을 형성해 갑니다. 아무리 타고난 성정이 있다고 해도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영향이 그만큼 지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는 어떻게든 아이를 잘 길러보겠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는 주눅 들고 지치고 상처받아 아침 햇살처럼 반짝거리던 상상력의 세계를 상실하게 됩니다. 지나치게 많은 학습과 지나치게 많은 간섭과 지나치게 과다한 보호 속에서 빛나는 개성을 상실하고 획일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교육이란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지 강제적으로 그릇을 채우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릇을 잘 만든 뒤, 그것에 무엇을 담을까 하는 건 아이 스스로 결정할 일입니다. 책을 찍어낸 출판사 사장이 저작권자 행세를 하며 책의 내용까지 자기 마음대로 뜯어고치겠다고 하는 건 월권행위가 분명하니까요. 아침 햇살처럼 눈부신 아이들,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잘 키워야겠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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