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너무 먼 꽃대궐

  • 입력 2009년 4월 25일 02시 54분


봄이 되면 많은 사람이 꽃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전남 구례군의 산수유, 광양만의 올매화, 쌍계사의 벚꽃은 먼 남도까지 많은 사람의 발길을 불러들입니다. 지리산 철쭉과 선운사 동백도 유명합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봄꽃축제를 열어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꽃을 구경하는 것인지, 사람을 구경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꽃이 조화가 되고 사람이 꽃이 되어 만개하는 것 같습니다.

봄이 될 때마다 너무 멀리 있는 꽃에 대해 생각합니다. 왜 꽃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야 하고 먼 길을 떠나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봄꽃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당에도 꽃이 있고 동구 밖에도 꽃이 있고 뒷산에도 꽃이 있으니 굳이 먼 곳까지 봄꽃을 보러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많던 봄꽃은 모두 사라지고 마당도 사라지고 동구 밖도 사라지고 뒷산도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엔 아파트가 들어서고 빌딩이 들어서고 상가가 들어섰습니다. 그것들을 치장하기 위해 봄꽃을 가로수로 심고 정원수로 심고 아파트 조경화로 심었습니다.

꽃을 생각할 때마다 꽃을 누리고 살았던 조상이 부럽습니다. 그들은 꽃과 함께 어우러지는 진정한 풍류를 누리고 살았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죽란시사서첩(竹蘭詩社書帖)’을 보면 열다섯 사람이 모여 시 모임을 결성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모임에 대한 약조를 꽃 피는 시절을 중심으로 잡아 기막힌 풍류를 느끼게 합니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시 모임이 있다니, 어느 누가 거기 참여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한여름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서늘한 초가을 서지(西池)에 연꽃이 구경할 만하면 한 번 모이고, 국화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겨울이 되어 큰 눈 내리는 날 한 번 모이고, 세모에 화분의 매화가 꽃을 피우면 한 번 모이기로 한다. 모일 때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준비해서 술을 마셔가며 시가를 읊조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람과 꽃이 하나가 되어 자연스럽게 어울리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꽃이 콘크리트 도시의 조화로 전락하고 행사용 꽃으로 전락하는 세상, 꽃을 찾아가는 우리의 여정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꽃이 우리에게서 멀어지듯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고 노래 부를 수 있는 아이도 희귀해져 갑니다. 마음의 고향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아파트 단지’라고 노래 불러야 할 아이들에게 꽃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콘크리트 포장을 걷어내고 흙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을 돌려주고 개천을 돌려주고 뒷동산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꽃이 핀다는 믿음이 없으면 봄이 오지 않습니다. 짧게 피고 지는 봄꽃의 메시지는 우리 마음에 오래 피는 꽃을 피우라는 것일 터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 꽃 속에서 한데 어우러져 목청껏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작가 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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