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고독한 사람의 새벽 전화

  • 입력 2009년 3월 14일 02시 58분


‘설화’ 체렌나드미드 첵미드, 그림 제공 포털아트
‘설화’ 체렌나드미드 첵미드, 그림 제공 포털아트
어느 날 새벽, 그가 전화를 걸어와 잠을 깼습니다. 그는 한없이 풀죽은 목소리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짧게 대답했습니다. 고독해…. 그래서 대화의 상대가 필요하냐고 나는 물었습니다. 그가 껄껄껄 웃으며 “천만의 말씀!”이라고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는 지금 아주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고독과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요컨대 나에게 그것을 자랑하기 위해 새벽 전화를 걸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의 말을 듣자 울컥, 나도 모르게 고독이 그리워졌습니다.

사람들은 ‘혼자’라는 말을 불완전한 상태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혼자 남겨지면 외롭다, 괴롭다, 슬프다 등등의 불안정한 감정 상태에 사로잡혀 육체적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혼자인 상태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함께’인 상태에 집착하게 됩니다. 심화되면 우울 증세에 시달리거나 술 마약 따위의 중독 상태에 사로잡히게 되고 더욱 진전되면 자살에 이르기도 합니다.

혼자인 상태를 압축해서 우리는 고독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에 대해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감정은 대부분 부정적입니다. 그래서 짝이 없거나 집단으로부터 소외된 느낌을 받을 때 사람들은 고독하다는 표현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근본적으로 혼자이므로 고독을 외면하면 든든한 인생살이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고독을 제대로 알아야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한 그것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독은 인생의 동반자이고, 인생의 버팀목입니다. 외면하고 부정해야 할 상태가 아니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상태입니다. 고독을 제대로 가꾸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갱신과 창의적인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타성에 빠진 나날을 살고, 타인과의 교류에서 아무런 보람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병든 고독의 소유자입니다.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고독을 기피하지 말고 오히려 끌어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고독과 함께 살며 인생의 독주자인 자신을 자각하고, 세상과 협주할 수 있는 콘체르토 형식의 인간관계에 눈을 떠야 합니다.

독주는 우아하지만 협주는 조화롭습니다. 나의 독주가 세상과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낼 때 인생은 비로소 풍요로워집니다. 그러니 고독한 그대여, 아직 그대의 고독이 과일의 씨앗처럼 단단하게 여물지 않았거든 고독하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마세요. 제대로 여문 것은 모든 것의 중심에 박혀 있고, 중심에 박혀 있는 것은 가볍고 경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독을 말하는 자는 고독을 모르고, 고독을 아는 자는 고독을 말하지 않습니다. 고독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정서 중에 가장 고상하고 가장 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독을 향유할 줄 아는 인생, 참다운 멋을 아는 인생입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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