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30>이보디보 생명의…

  • 입력 2008년 4월 18일 03시 01분


《“형태를 이해하려면 발생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단세포인 수정란이 자라서 수십억 개의 세포로 이뤄진 복잡한 동물이 되는 과정이 발생이다. 200년에 가까운 생물학의 역사에서 가장 풀기 힘든 미스터리로 여겨온 굉장한 현상이다. 생명체 형태의 변화는 배아의 변화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발생은 진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모든 동물의 유전자는 거의 닮았다

‘이보디보(Evo Devo).’

진화발생생물학(Evolutionary Developmental Biology)을 뜻하는 이 신조어는 최근 생물학 계에서 가히 혁명적 의미로 쓰인다. 사실 생물학은 작게는 수십 개의 세부 학문 분야로 나뉘어 있는 상태다. 그동안 유전학이나 생리학 등을 다루는 기능생물학 분야, 생태학과 계통분류학 등이 포함된 진화생물학 분야, 최근에 각광받는 생물정보학 분야 등이 거의 서로 이방인 대하듯 담을 쌓아 왔다.

하지만 진화생물학과 발생생물학의 통섭을 뜻하는 이보디보가 출현하면서 생명과 관련된 학문 분야는 하나로 묶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많은 해외 대학에서 이보디보의 개념을 받아들여 ‘통합생물학과’가 들어서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의 유전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러한 이보디보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대표적 생물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보디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생소한 학문이 아니다. 이미 찰스 다윈 시대부터 생물학자들은 진화와 발생의 관계를 눈치 채고 있었다. 분명 진화학에서 살피는, 세포 덩어리 수준의 생명체가 오랜 세월을 거쳐 고등생물로 진화하는 현상은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발생학에서 다루는 하나의 세포에 불과한 수정란이 복잡한 성체로 ‘발생’하는 건 단순한 일일까. 진화론자 다윈조차 “형태의 변화를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사실들이 담긴 학문”으로 발생학을 꼽았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80년대 들어서며 진화 과정 연구에서 발생학 관점의 유용성은 더욱 두드러졌다. 발생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지속적으로 발견됐다. 그리고 그 유전자들이 진화에서 맡는 역할들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보디보를 통해 밝혀진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모든 동물의 유전자가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한 가지 예로 눈을 담당하는 유전자는 파리나 생쥐나 엇비슷하다. 심지어 인간의 눈 발생 유전자를 파리에 삽입해도 정상적인 파리 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눈뿐이 아니다. 팔다리나 심장, 신체 배열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진화가 유전자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유전자 사용 방식의 변화로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저자는 이를 ‘유전자 스위치’라고 부른다.

이 같은 발견은 단백질을 만드는 ‘구조 유전자’에 대한 생물학계의 기존 관심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즉 단백질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 스위치를 맡아 진화 기능을 담당하는 ‘조절 유전자’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보디보는 여전히 진행형 학문이다. 아직 정설로 받아들여진 상태도 아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엄청난 잠재력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하나의 분야에선 풀리지 않았던 난관들이 이보디보라는 통합 학문을 통해 극복되고 있다. 그만큼 통섭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 가는 셈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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