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년-위안의 詩]안현미 ‘음악처럼 비처럼’

  • 입력 2008년 9월 11일 02시 58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아마도 이 시인은 하나의 음악을 상상하면서 이 시를 지었나 봅니다. 그 음악은 어떤 음악이었기에 이토록 마음을 춘천교회의 어느 외딴길 건너편에 세워 두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자꾸 귀를 기울이게 하는 걸까요. 시인은 그걸 사랑이라고 불렀다가 음악이라고도 부릅니다.

음악이 사랑과 가장 닮아 있을 때는 사람이 그 음악 안에서 가장 가난해지는 순간입니다. 사람이 그 음악으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때, 그 음악 안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를 보내곤 했을 순간의 일입니다. 사람이 가난한 사랑을 하게 되면 자신과 가장 닮아 있는 음악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이 세상의 술래가 되어 그 어리둥절함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음악 같은 그 경험이 그를 사랑이라는 가난한 일에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언젠가 춘천교회를 지나다가 문득 아련한 물방울들이 서걱거리는 이 시를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시인의 추억인지, 시인이 본 추억인지 시 속엔 가난한 연인이 등장합니다. 잡초가 무성한 텅 빈 2층 양옥집이 보이고 예배당 앞에 나란히 앉아 서로 담뱃불을 붙여주는 연인이 보입니다. 시인은 언젠가 그 깨끗한 양옥집에 들어가 꼭 한 달만 살아보자고 연인을 꼬드겨 보고 싶었나 봅니다. 꼬드긴다는 말이 주는 여운이 이토록 아름다운 비애를 자랑하는 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 달만…같이…살아보자고…꼬드겨 보고 싶다는 생각, 우리도 누군가의 속눈썹을 훔쳐보며 마음속에 중얼거려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중얼거리는 일도 사랑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려줍니다. 그리고 시인은 가난한 사랑 후에 이렇게 자신에게 허락된 사랑과 음악의 양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랑이란 한없이 뒤뚱거리는 것이라는 것을, 그 뒤뚱거림조차 사랑이라는 걸, 이제는 알겠네.”

김경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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