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별]가수 김장훈의 ‘영원한 영웅’ 조훈현 9단

  • 입력 2007년 9월 1일 03시 03분


코멘트
가수 김장훈(오른쪽)이 2004년 전자랜드배 왕중왕전 개막식에서 초청가수로 노래를 부른 뒤 조훈현 9단과 기념 촬영을 하며 즐겁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사이버오로
가수 김장훈(오른쪽)이 2004년 전자랜드배 왕중왕전 개막식에서 초청가수로 노래를 부른 뒤 조훈현 9단과 기념 촬영을 하며 즐겁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사이버오로
노래와 바둑. 내 인생에서 미치도록 빠져들었던 대상들이다. 노래는 직업으로 남았고 바둑은 낭만으로 남아서 내 인생에서 함께 숨쉬고 있다.

내가 처음 바둑을 접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집 운전사 아저씨에게서였다. 그 아저씨는 내게 단수, 축 등 바둑의 기초를 알려주고는 24점 접바둑부터 두기 시작했다. 사흘간 두니 맞바둑을 두게 됐다. 접힌 돌을 한 점씩 줄여가며 거두는 승리에 취해 바둑에 흠뻑 빠져들었다.

세탁소와 기름집 등 바둑 두는 동네 아저씨들을 평정할 무렵 어머니는 내가 바둑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나를 기원에 데려가기도 했고 당시 TV 바둑해설자로 유명했던 고 김수영 사범님께 배우게 할까도 고민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심한 기관지 천식과 악성 빈혈로 3년 동안 병원에서 입원생활을 한 이후 프로기사의 꿈은 접었고 바둑과 책은 병원 생활의 외로움을 이겨내는 유일한 친구가 됐다.

워낙 바둑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한동안 바둑에 미쳤다. 지금은 생활의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친구로 남아 있는데 만약 프로기사가 됐다면 어떤 삶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끔 웃음 짓는다.

내 바둑 편력에 가장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왔던 것은 ‘조훈현’이라는 이름이었다. 조훈현 국수를 처음 알게 된 건 아주 어릴 적 신문 기사를 통해서였다. 당시 일본 기사들이 내한해 한국 기사들과 친선대국을 벌였다. 일본 측은 한국의 실력이 일본보다 두 점 정도 낮다고 은근히 깔보고 있었던 듯하다. 어린 마음에도 일본 측의 태도가 기분 좋을 리 없었지만 현실적으론 일본 측이 압도적으로 이길 확률이 더 높았다.

하지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조 국수가 한국 기사 중 유일하게 일본의 기사들을 모두 꺾었던 것이다. 한국 바둑의 자존심을 세워준 조 국수의 승리는 나에게 바둑이 바둑 이상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조 국수가 나의 ‘별’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 사건은 제1회 잉창치배 세계바둑대회에서 조 국수가 우승한 것이었다. 당시 대회 주최 측은 한국 바둑을 무시해 한국 선수로는 조 국수 한 명만 초청해 대회를 치렀다. 단기필마로 적진에 들어가 온갖 수모를 겪으며 따낸 우승이었기에 감격은 더했다. 나는 바둑을 한국 중국 일본 간의 두뇌싸움이라는 또 다른 승부로 생각했기 때문에 조 국수가 세계바둑대회에서 우승할 때마다 누구보다 기뻐했다. 세계바둑 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면 바쁜 일정 중에서도 짬을 내 직접 대국 장소로 찾아가기도 했다.

조 국수를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난다. 지방에 공연이 있어서 공항으로 가던 중 공항버스에서 처음 조 국수를 봤다. 사인을 받으려고 허둥지둥 종이와 펜을 찾았다. 그때 동행했던 사람들은 당시 내가 정신 나간 것처럼 보였다고 놀렸을 정도로 흥분했다. 직업이 연예인인지라 같은 연예인들은 봐도 아무 느낌이 없는데, 프로 기사는 내가 못 이룬 꿈을 이룬 분들이라 경외감부터 든다. 게다가 조 국수는 어린 시절부터 영웅이었으니 오죽 흥분했을까.

조 국수와의 두 번째 만남은 바둑인 행사 때 노래를 부르러 간 자리에서 이뤄졌다. 조 국수도 그 행사에 참석했다. 하지만 바둑 두는 분들은 조용한 성품인 듯 공연 분위기가 매우 온화(?)해 쑥스럽기까지 하였다. 조 국수를 만나는 건 정말 드문 기회이기 때문에 노래 중간에 조 국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 국수가 걸어 나오더니 악수를 하고 안아주셨다. 순간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그 후 분위기가 확 뜨면서 흥겹게 공연을 마무리했다. 아마도 썰렁한 공연 분위기를 눈치 챈 조 국수의 배려였을 것 같다. 조 국수는 행마가 재빠르다고 해서 ‘제비’라는 별명이 있는데 일상생활에서도 제비와 같은 발 빠른 대응을 보여 주었다.

조 국수와의 세 번째 만남은 의외의 사건이었다. 어느 날 내 홈페이지를 열어 보니 비밀 글을 쓰는 방에 ‘아버지한테 공연 티켓을 준다고 약속해 놓고 아직도 주지 않았다’는 원망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공연 티켓을 공짜로 주는 걸 싫어한다. 그런 약속을 했을 리가 없다고 답글을 올렸더니 분명히 아버지한테 얘기를 들었다고 답이 왔다. 글쓴이의 이름을 보니 조 씨였다.

순간 번개처럼 스쳐가는 생각에 아버지 성함이 혹시 조훈현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또 머리가 홱 돌면서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아버님은 뭐 하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여인천하’를 보신다고 했다. ‘와∼ 조 국수도 드라마를 보는 구나’ 하고 무척 신기해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올해 공연 때는 반드시 조 국수와 따님에게 약속을 지키려 한다.

요즘 조 국수의 성적이 나빠지자 많은 팬이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하지만 승부사의 길을 걷는 외로움과 고통을 우리가 만분의 일이라도 알 수 있을까.

조 국수는 혼자서 대한민국의 바둑을 짊어지고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 이후 많은 후배 기사가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이제 조 국수가 승부사의 고통보다는 대한민국 바둑의 상징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물론 내가 아는 한 ‘조훈현’이라는 이름은 다시 한 번 우승 명단에 오를 것으로 믿지만 그 길에 예전 같은 승부의 고통이나 외로움이 아닌 여유와 자유로움이 넘쳤으면 한다. 조 국수가 승패와 관계없이 영원히 바둑 안에서 행복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김장훈 가수

▼조 9단 “딸이 공연티켓 기다리는데…”▼

가수 김장훈의 바둑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주변에선 아마 5단은 충분하다고 말한다. 2000년 추석 때 바둑TV가 마련한 특별 초청대국에서 여성 프로기사 김효정 2단에게 5점 바둑을 둬 완승을 거뒀다. 당시 5점은 김장훈의 실력에 비해 너무 많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는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열정적인 바둑 팬이다. 어릴 적 한국기원 인근 중국집에서 배달원을 하고 싶어 했다. 한국기원에 배달 가면 프로기사들을 볼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1999년 삼성화재배 결승 최종국이 열리던 날 자신이 맡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대국 진행 상황을 수시로 중계했을 정도다. 가수 은퇴 후엔 바둑살롱을 열어 한 벽면엔 자신의 콘서트 사진을 걸고 다른 면엔 프로기사들 사진과 사인을 걸어 놓고 싶다고 말한다.

조훈현 9단은 김장훈이 자신을 내 마음속의 별로 존경한다는 말을 듣고 “(김장훈이) 성격도 좋아 보이고 기부 등 좋은 일도 많이 하는데 나를 ‘별’로 봐 준다니 고맙다”며 “하지만 노래는 내 취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9단도 2004년 전자랜드배 왕중왕전 개막식 축하연에서 김 씨가 초청 가수로 나와 무대에서 자신에 대해 언급한 일을 기억했다.

“김장훈 씨가 노래를 부르다가 간주가 나오자 ‘바둑대회가 끝나고 몰려든 팬들에게 정성스레 사인해 주는 조 국수님을 보고 저도 팬들에게 열심히 사인해 줘야겠다고 생각해 실천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격려 차원에서 무대로 나가 악수하고 등을 두드려 줬다. 나중에 단둘이 기념 촬영도 했다.”

조 9단은 “당시 약속했던 공연 티켓을 딸이 아직도 못 받은 듯하다. 아무래도 지도대국을 한 판 둬 줘야 티켓이 올 것 같다”며 웃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