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브랜드]“I chocolate you” 글로벌 러브폰

  • 입력 2006년 9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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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이 사라졌다.”

지난달 7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의 한 회사에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날 펜실베이니아에 도착할 예정이던 초콜릿의 행방이 오리무중이었다.

지역 경찰은 물론 미국 연방수사국(FBI)까지 수사에 나섰다. 5일에 걸친 수사 결과 트럭 운전사가 초콜릿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LG전자의 ‘초콜릿 폰’. 카카오 반죽에 밀크 버터 설탕 향료 등을 첨가한 것이 초콜릿이다. 원료의 0.1%도 쓰지 않은 이 휴대전화는 자신이 초콜릿이라고 주장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11월 시장에 나온 뒤 8월 말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320만 대가 팔렸다. 북미 지역에서는 도난당했다가 되찾는 유명세를 치르면서 4주 만에 59만 대가 판매됐다.

국내에 이어 세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초콜릿의 비밀을 들춰 봤다.

○ 초콜릿의 역습

초콜릿의 주 재료인 카카오 콩은 멕시코 원주민들이 음료로 사용하던 것이다. 15세기 말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진다. 그 멕시코에서 초콜릿은 한국에서 건너온 휴대전화를 의미한다.

‘보니토 초콜라테(예쁜 초콜릿)’는 멕시코에서 하루 판매량 최대 5500대를 기록하며 프리미엄급 휴대전화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초콜릿 폰의 감성 마케팅 전략은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에서의 마케팅 슬로건은 ‘Everyone loves chocolate(모든 사람이 초콜릿을 사랑한다)’. 문법에는 맞지 않지만 중국의 젊은 연인들에게 ‘I chocolate you’는 초콜릿 폰의 상징어가 됐다.

유럽에서는 초콜릿 폰이 모토로라 레이저 폰의 아성을 무너뜨릴 ‘킬러’ 폰으로 불리고 있다. 영국에서는 축구 스타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연인 콜린 매클로플린이 광고 모델로 등장했다.

세계적 시장조사회사인 스트래티지 애널리스틱스가 영국 런던에서 실시한 조사를 토대로 7월에 발표한 ‘초슬림폰 사용자 평가 보고서’에서 초콜릿 폰은 종합 1위에 올랐다. 미국 비즈니스 전문채널인 CNBC의 경제 코너 ‘온 더 머니’는 뛰어난 디자인의 프리미엄 폰으로,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주일의 제품’으로 소개했다.

○ 초콜릿의 탄생

콜럼버스가 달걀을 깨뜨려 세운 것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초콜릿 폰 성공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초콜릿 폰이라는 명칭은 다른 대안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다. 하지만 LG전자가 지난해 두께 14.9mm의 ‘초슬림 슬라이드 폰’을 개발했을 때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휴대전화는 기능을 담은 ‘디카 폰’ ‘MP3 폰’이나 ‘LG-SV590’처럼 모델명으로 불리는 게 관행이었다.

상상해 보라. 얼마나 썰렁한가. 아니면 CF 모델로 등장한 연예인의 이름을 따 ‘김태희 폰’으로 유행했을 것이다.

지난해 9월 LG전자 내에서는 새 휴대전화의 마케팅 전략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초콜릿의 이미지는 달콤함과 즐거움이다. 휴대전화와 초콜릿을 연결시키는 것은 모험이지만 한번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김주진 부장)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초콜릿은 ‘럭셔리’한 느낌의 휴대전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2개월의 논쟁 끝에 감성 전략을 채택했다. 초콜릿 폰은 나오자마자 하루 4000대 이상 팔리며 ‘대박’을 터뜨렸다. 1000대가 팔리면 ‘히트’로 평가받던 시점이다.

김 부장의 말. “광고대행사의 한 신입사원이 대뜸 ‘어, 이거 초콜릿 닮았다’고 하더군요. 순간 목욕탕 속의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라고 외치고 싶더군요. 대박의 감이 찌르르 흘렀습니다.”

○ 초콜릿의 맛

‘맛’이 없었다면 포장(마케팅)이 아무리 뛰어나도 대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LG전자 차강희 책임연구원(MC디자인연구소)은 초콜릿 폰의 에센스를 만든 ‘쇼콜라티에(chocolatier·초콜릿 장인)’다. 놀랍게도 초콜릿 폰은 그가 디자인한 첫 휴대전화다. 20년 이상 휴대용 카세트, 비디오, 오디오 등 디지털미디어 분야의 디자이너로 일해 왔다. 2004년 늦가을 그에게 난데없이 휴대전화를 디자인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그가 가진 ‘레시피(조리법)’는 당시 화두였던 블랙과 슬림, 두가지뿐이었다. 이것 빼고는 기존 휴대전화 디자인의 관행을 모두 버렸다.

‘휴대전화 전면에서 버튼을 없앨 수는 없을까.’ ‘화면이 꼭 보일 필요가 있을까.’ ‘기능이 많을 필요가 있을까….’ 기발한 발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디자인만으로도 누구나 갖고 싶은 폰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기술이나 소재의 어려움을 처음부터 고려했다면 초콜릿 폰은 태어나지 못했겠지요.”

검은 초콜릿의 앞부분을 밀어 올리는 순간 관능적인 붉은색이 감도는 터치 패드가 드러난다. 불필요한 선과 로고, 장식 등은 절반 이상 줄이고 배터리 전면부의 LG 로고까지 없앴다. 옆 테두리를 감싼 실버 띠는 14.9mm의 허리가 더 날씬하게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제공했다.

○ 초콜릿의 진화

초콜릿 폰의 맛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다시 한번 진화했다.

유럽형은 유럽인의 손이 동양인에 비해 크다는 점을 감안해 폭을 넓게 만들었다. 북미형은 음악을 선호하는 현지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춰 음악 기능을 강화했다. 휴대전화 전면에 음악 감상에 편리한 동그란 ‘터치휠키’를 추가했고, 2GB(기가바이트) 용량의 메모리 슬롯을 장착해 500곡 이상의 노래를 저장할 수 있게 했다.

초콜릿 폰의 성공은 첨단 기능의 개발 속도전에 매달려 온 휴대전화 업계에 감성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통화하고,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는 등의 기능 위주가 아니라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매혹적인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휴대전화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초콜릿 폰의 성공 스토리는 LG전자에서 혁신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부각되고 있다. 한 간부는 “초콜릿 폰이 부진했던 휴대전화 부문을 회생시킨 것은 물론 기업의 ‘DNA’를 바꿨다”고 말했다.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음식 사학자인 소피 도브잔스키는 초콜릿을 ‘해피 케미컬(행복감을 주는 화학 물질)을 지닌 신들의 열매’라고 했다. 맛있고 깜찍한 초콜릿 폰. 여기에는 잘 팔리는 상품을 넘어 ‘해피 브랜드’가 되고 싶은 꿈이 담겨 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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