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97>孟 姜 女(맹강녀)

  • 입력 2003년 7월 20일 17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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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 姜 女(맹강녀)

患-근심 환 役-부릴 역 犧-희생 희

牆-담 장 徵-부를 징 祠-사당 사

지난번에 ‘萬里長城’(만리장성)을 설명한 바 있다. 萬里長城의 위치나 규모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이른바 ‘北患’(북환·북방 오랑캐의 침략)을 방비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으로 출발한 것인 만큼 평지나 산지를 가릴 것 없이 築造(축조)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해발 3500m가 넘는 곳에 세워진 것도 있으며 때로 천 길 낭떠러지도 피하지 않는다. 일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베이징(北京) 교외 서북방 60km에 위치한 八達嶺(팔달령) 長城만 해도 그 險峻(험준)함에 혀를 차게 된다.

전제군주시대의 役事(역사)에는 늘 엄청난 犧牲(희생)이 따랐다. 그래서 위대한 건축물에는 백성의 痛恨(통한)이 함께 서려 있는 법이다. 萬里長城의 修築(수축)도 例外(예외)가 아니다. 國防(국방)이라는 美名(미명) 하에 수백만명의 無辜(무고)한 백성이 동원되었으며 이와 함께 무수한 인명이 犧牲되었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史實(사실)이다. 犧牲은 築造로 끝나지 않았다. 長城의 補修(보수)는 역대 왕조의 커다란 두통거리였다. 비바람에 허물어진 長城을 보수하기 위해 매번 수십만명이 동원되어야 했다. 明(명)나라 때 오죽했으면 ‘長城’이란 말에 치를 떨어 ‘邊牆’(변장)으로 바꿔 불러야 했을까.

자연히 萬里長城에 얽힌 슬픈 전설이 없을 수 없다. 秦(진)나라 때의 이야기다. 范杞梁(범기량)과 孟姜女(맹강녀)는 신혼부부였다. 신혼의 꿈도 채 가시기 전, 갑자기 날아든 徵集令(징집령)으로 부부는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갔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孟姜女는 남편을 찾아 나섰다. 손수 지은 겨울옷을 들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千辛萬苦(천신만고) 끝에 萬里長城까지 찾아갔건만 불행하게도 그녀를 기다린 것은 남편의 죽음뿐이었다. 극심한 勞役(노역)을 견디다 못해 남편은 이미 不歸(불귀)의 客(객)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孟姜女는 대성통곡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고 슬펐던지 천지를 진동시켰고 눈물은 성벽을 적셨다. 이 때 長城이 무려 40리나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그녀를 본 秦始皇(진시황)은 뛰어난 美貌(미모)에 반하고 말았다. 孟姜女는 남편의 시신을 찾아 安葬(안장)해 주면 첩이 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秦始皇이 요구를 들어주자 그녀는 그만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현재 山海關(산해관) 동쪽 鳳凰山(봉황산) 꼭대기에 그녀의 祠堂(사당)이 있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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