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비평가 vs 관객…‘가문의 위기’감상법

  • 입력 2005년 9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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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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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섹스 코미디’라는 평단의 신랄한 비판을 받으며 7일 개봉된 영화 ‘가문의 위기’(정용기 감독)가 25일까지 관객 444만 명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평단이 비난하는 데는 이유가 있고, 관객이 많이 보는 데도 까닭이 있는 법. ‘가문의 위기’ 중 핵심 장면과 대사를 두고 한 여성 영화평론가와 모녀 관객(58세 어머니와 28세 직장인 딸)의 엇갈린 소감을 들어보았다.

① “너 오렌지가 영어로 뭔지 아냐?”(둘째 아들 석재) “익숙헌 단언디….”(셋째 아들 경재) “이런 무식한…. 델몬트여, 델몬트.”(석재) “아, 델몬트. 아깝구만잉.”(경재) “석재야. 그럼 썬키스트는 영어로 뭐냐?”(큰 아들 인재) “….”(일동)

▽비평가=말장난에도 슬랩스틱(법석을 떠는 것)이 있다. 이는 수준 높은 언어 유희가 아니라 말초적 말장난에 불과하다. 여섯 살만 돼도 아는 영어단어조차도 모르는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영화가 노리는 타깃 관객이 누군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의 ‘창조적 지력’의 수준을 보여준다.

▽모녀=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1절만 하지, 2절 ‘썬키스트’까진 안 했더라면 더 산뜻했을 텐데. ‘루이비똥’이란 브랜드를 몰라서 석재가 “똥은 무슨 똥?”할 때도 웃다가 죽는 줄 알았다.

② 중국산 가슴 확대 크림을 바른 여검사 진경은 다음날 가슴이 딱딱하게 굳어 고통스러워한다. 사정을 모르는 인재는 진경을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운 채 계단으로 오토바이를 몬다. 진경이 “아아아”하는 신음의 뜻을 착각하고 좋아하는 인재.(사진)

▽모녀=영화 중 가장 웃겼던 장면이다. 우와, 얼마나 아팠을까.

▽비평가=섹스 코미디라고 나쁜 게 아니다. 문제는 신체의 일부에 국한되는 편협함. 이는 삽입성교만을 강요하는 마초처럼 폭력적이다. 진경의 가슴과 인재의 성기만 부각시키는 건 곧 가슴이나 남근이 성적 지표라는 사실과 통한다. 거기에는 포르노 잡지나 동영상을 뒤지는 유치한 호기심 정도밖에 없다.

③ 조폭 여두목 홍 회장은 자신의 등에 새겨진 호랑이 문신을 며느리에게 보여주며 한탄한다. “난 말이여, 공중 목간 한번 가 보는 게 소원이여. 이 꼴(문신)을 하고 있응께 한번도 그런 데를 못 가봤다. 우리 아그들헌테는 이런 팔자를 물려주지 말았어야 하는 것인디….”

▽비평가=조폭이라는 위험한 실체를 가족 이데올로기나 한 여자의 일생으로 희석시키려는 위험한 발상이다. 조폭 생활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뛰어들어야 했던 숭고한 어머니의 희생처럼 미화시켰다. 어머니의 눈물이야말로 관객의 객관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포인트임을 알고 있는 제작자의 불순한 의도와 연관된다.

▽모녀=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웃긴 영화로만 알았는데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부모 마음은 누구나 다 같다는 걸 느꼈다. 자식이 늘 눈에 밟히는 것이다.

④ 결국 홍 회장 가족은 진경을 며느리로 받아들인 뒤 조폭 해단식을 갖는다.

▽모녀=비록 조폭이지만 결국 손 씻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희망과 교훈을 주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서 조폭가족이 변하지 않는 ‘가문의 영광’보다 이 영화가 더 남는 게 있는 것 같다.

▽비평가=좋은 조폭, 나쁜 조폭이 있다는 가정 자체가 억지스럽다. 검사가 조폭과 손잡는다는 설정은 억지 설정을 해결하려는 아전인수식 결말에 불과하다. 이는 단지 설정에 덧붙인 결론일 뿐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적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 훌륭한 며느리를 얻기 위해 가업을 포기하는 것이지, 진정 과오를 후회한다는 맥락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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